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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평점 :
이 책은 독백체로 쓰인 소설이다. 희극적인 동시에 에세이 같기도 하다. 장르의 경계를 흐리는 것처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카뮈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암스테르담의 짙은 안개처럼, 의미는 늘 흩어지고 포착되지 않는다.
주인공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 이름부터 세례 요한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마치 광야에서 외치듯 고백하고, 독백한다. 그의 메시지는 단 하나, "회개하라." 하지만 왜? 클라망스에 따르면, 회개란 남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그는 자신의 허물을 솔직히 고백함으로써, 듣는 자가 자신의 죄를 되돌아보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진정한 목적일까?
그의 목적은 회개의 보편적 가치에 있지 않다. 그는 상대가 자신을 심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상대에게 먼저 회개를 요구한다. 타인의 우위에 서기 위해 스스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인간 존재 자체가 모순이 아니던가. 우리는 모두 죄를 짓는다. 언제나, 그리고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게.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회개할 수밖에 없다. 이 숙명, 남들의 심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 누구보다 먼저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이 방법을 택한 자가 있었다. 예수다. 그는 가장 먼저 회개함으로써, 인간이 서로를 심판하는 행위를 멈추게 하고자 했다. 그리고 십자가를 선택했다. 하지만 복음서의 저자 누가는 이를 방해했다. 그는 예수가 마지막 순간에 남긴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라는 절망의 외침을 지웠다. 그리하여 예수는 신이 되었고, 그의 회개는 무의미해졌다. 만약 우리가 예수를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받아들였다면, 세상은 덜 타락했을까? 인간은 서로를 심판하는 것을 멈출 수 있었을까?
그러나 클라망스는 여전히 안개 낀 암스테르담의 선술집 ‘멕시코시티’에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그는 더 이상 법정에서 변호 놀이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고백 놀이를 한다. 거울 놀이를 한다. 타인의 죄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변호하기 위해. 그가 비추는 거울 속에는 우리가 있다. 그는 예수가 실패한 꿈을 대신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죄는 자신만이 변호하고 심판할 수 있다는.
<전락>에서 말을 하고 있는 남자는 계산된 고백에 몰두한다. 운하와 싸늘한 빛이 가득한 도시 암스테르담에 물러나 은자 혹은 예언자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이 전직 변호사는 어느 수상한 바에서 자기의 말에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여 줄 말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는 현대적인 마음의 소유자다. 다시 말해서 남에게 심판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서둘러 자기 자신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들을 더 마음껏 심판할 수 있기 위해서다. 그는 자기 모습을 비춰보던 거울을 결국 다른 사람들 얼굴 앞으로 내민다. 어디서부터가 고백이고 어디서부터가 고발인가? 이 책에서 화자는 자신의 재판을 벌이는 것인가 자기 시대의 재판을 벌이는 것인가? 그는 예외적 인물인가 아니면 우리 시대의 주인공인가? 어찌 되었든, 이 용의주도한 거울 놀이에서 단 한 가지 진실은 다름 아닌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이 약속하는 미래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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