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학사학자 엘렌느 메츠제가 화학의 기원을 첫째는 금속학, 둘째는 연금술, 그 다음에 의학 이렇게 세 가지를 기원로 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에서 보면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서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겹치는 부분이 많다. 연금술은 2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금속학과 의학이 처음부터 화학과 관련이 깊지만 16세기에 와서 근대화학이 나오기 직전에 큰 구실을 했다.

먼저 금속학의 전통에 대해서 보면, 인류문명에서 불의 발견이 큰 사건이었다. 특히 불을 가지고 금속을 벼리기 시작했을 때 문명의 불이 붙었다. 여러 가지 금속이 있는데 화학기호로 본다면 Cu, Au, Ag, Pb, Sn, Fe 뭐 이런 것들인데, 제일 먼저 많이 쓰인 것이 구리Cu다. 구리를 단단하게 하려고 한 합금의 대표적인 놋쇠는 구리하고 주석Sn하고 섞인 것이다. 그러니까 Copper하고 Tin하고 합해서 Bronze가 된다.

그 다음에 금하고 은이 섞이면 누렇던 금이 흰빛을 띠게 되는데 그걸 그 때는 백금이라고도 불렀다. white gold라고 부르는데 플래티늄하고는 다른 것이다. 진짜 백금은 플래티늄Pt이다. 고대의 금세공술이 굉장히 발달했다.

그다음에 또 하나가 도자기인데 처음에는 토기로 시작해서 유약이라는 화학 물질을 토기에 발라서 구우면 번들번들 빛이 나는 도기, 자기가 발달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유리를 발견하게 된다. 유리는 규소Si. 요새 말로 실리콘인데, 실리콘하고 모래하고 섞여 가지고 고열에 녹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주 투명한 맑은 액체가 굳어가지고 유리가 나왔다. 경주박물관에 가면 유리제품들이 있는데 그게 페르시아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신라는 유리 공업을 발전시켜서 유리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런 것이 모두 화학에 관계된 것이고 그 밖에도 양조술(술 담그는 것), 천을 직조하면서 물들이는 것(염색), 이런 것이 모두 화학에 관계되는 고대의 성과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술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고 아직 과학이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화학이 물질의 과학이니까 결국 물질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그리스 자연철학에서는 처음에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했다. 철학의 시조라고 하는 탈레스는 아르케는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고 그 다음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다.

고대에도 물질이 아니라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to apeiron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한자다. unlimited 또는 boundless. 무언가 분명하게 결정할 수 없는 것, 무한한 존재 이것이 우주의 기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에 파르메니데스는 이것을 ‘존재being’라는 것으로 본다. 그 다음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기본을 '수number'라고 했다. 이 경우의 수라는 것은 산술적인 수라기보다 기하학적인 점이 하나하나 쌓여서 마치 원자가 모여서 물질이 된 것처럼 우주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피타고라스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부터 내려오는 우화를 빌려서 우주의 기원을 설명했는데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는 원초적인 물질이 대혼돈chaos 상태에 있는 것을 신demiurgos이 여기에 질서를 불어넣어서 질서정연한 우주kosmos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초적인 상태에서의 재료가 된 4원소를 가지고 신demiurgos이 질서있는 우주를 만들 때 그것을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4원소 중에 흙은 고정되어 있는데 나머지 불, 공기, 물은 서로 합쳐서 딴 게 될 수도 있고 나눠져서 두 가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고 이렇게 상호가변적인 서로 왔다갔다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주를 완전히 기하학적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기하학적인 연금술’이라고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에는 재료가 있고 그 재료를 지배하는 원리 같은 것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보았다. primary matter에 네 가지 성질이 부가되어서 그 원소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네 가지 성질은 hot뜨거운 것, cold찬 것, dry마른 것, moist 습한 것으로 나뉘어진다. 붉, 흙, 물, 공기 그 다음에 뜨거운 것, 마른 것, 찬 것, 축축한 것. 이렇게 보면 어떤 원소는 primary matter를 기본으로 해서 네 가지 성질이 섞여 있는데 거기에서 적극적인 성질에서 하나, 소극적인 성질에서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세하다. 그런데 어느 것이 우세하냐에 따라 원소의 성질이 정해진다. 불은 제1질료의 네 가지 성질이 섞여 있는데 거기에서 뜨거운 성질과 마른 성질이 우세한 것이 불입니다. 그 다음에 흙은 뭐냐 하면 찬 성질과 마른 성질이 우세한 것이 흙이고, 물은 축축한 것과 찬 것이 우세한 것이 물이에요. 그럴 듯 하죠. 공기는 뜨거운 것과 축축한 것. 이런 식으로 된다. 이건 결국 우리가 어떤 외부에 조작을 가해서 성질의 비를 바꿀 수만 있다면 원소 자체가 바뀔 수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플라톤의 경우에는 흙 하나는 고정이고 나머지 세 원소가 수학적인 원리로 서로 왔다갔다 할 수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가면 흙을 포함한 4원소가 자유자재로 어떤 조작에 의해서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있게 된다. 이게 나중에 연금술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원자론에 오면 모든 것이 같은 원자라는 단위로 설명이 되고 차이는 양적인 차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질이 같은 원자로 이루어진 우주이지만 이것이 양이 많으냐 적으냐 그 모양이 어떻게 결합했느냐에 따라서 삼라만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어떤 외부의 원인에 따라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원인에 따라서 운동을 한다. 따라서 원자의 운동에는 목적이 없고 제 멋대로 운동을 한다. 그 결과 그때그때 결합과 분리에 따라서 다른 세계가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과거도 그렇고 앞으로의 세계도 원자의 결합분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떻게 보면 불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원자론의 기본 입장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될 것은 이런 물질이론이 경험적인 어떤 연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변적인, 머리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경험하고 아주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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