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가 뉴턴을 찾아가서 ‘어떤 행성이 행성과 태양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따라서 줄어든다면 그 궤도는 어떤 것이냐’하고 물으니까 뉴턴이 그 자리에서 ‘그건 타원이다’ 했다. 헬리가 출판비용까지 자기가 대겠다고 해서 억지로 우겨서 결국 쓰게 된 게 프린키피아다.

뉴턴 역학의 가장 중요한 것이 ‘중력’인데 중력은 거리가 떨어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따르면 물체의 운동은 강제운동이다. 강제운동의 경우는 힘과 물체가 접촉해 있어야 밀거나 끌 때 운동이 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접촉물리학’이라고 한다. 결국 뉴턴은 지상의 운동하는 물체에 적용되는 물리학이 바로 천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줘서 아리스토텔레스이래 달을 중심으로 해서 천상계와 지상계가 전혀 다른 세계로 나뉘어있었는데 이 둘을 통일했다.

직선적인 관성을 발견한 것이 데카르트이고 데카르트는 뛰어난 직관으로 이것을 발견했다는데 뉴턴은 이것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했다. 뉴턴은 완전히 경험을 무시하고 끝까지 수학적인 추론을 해서 결국 직선적인 관성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런 점에서 갈릴레오 비슷하게 이성과 경험을 조화시키고 종합했으면서도 더 완벽한 경지까지 갈 수 있었다.

광학책은 주로 경험적인 방법에 의존한 책이고 프린키피아는 수학적인 방법에 의존했고 그래서 융통성 있게 경우에 따라서 그 둘을 자유자재로 쓴 것이 뉴턴이라고 볼 수 있다. 옵틱스에서 “Hypothesis non fingo(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는 말을 했다. 데카르트 같이 경험으로 진위가 판명될 수 없는 허황된 가설, 그런 가설은 안 만든다, 가설 일반을 부정하는 얘기가 아니라 데카르트류의 가설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이 대개 뉴턴과 로크가 영웅이다. 뉴턴 물리학을 모든 학문에 적용하려고 한 것이 이 사람들의 꿈이었다. 18세기 말에 가면 화학에서 라봐지에가 뉴턴의 물리학을 화학에 적용하려 그랬고 19세기에 가면 뵈퐁, 다윈도 결국 뉴턴 물리학을 생물학에 적용한 사람들이다. 광학에서는 19세기에 가서야 가령 파동설 같은 것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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