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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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페이지도 안 봤는데 눈물을 자극하면 남은 300페이지를 어떻게 완독하라고 이런 소설을 썼을까.

소설 중 증조부가 하는 짓이 꼭 우리 아빠를 빼닮아서 그런지 작품에 너무 쉽게 나 자신이 투영됐다.

그리고 그냥… 다 읽고 나니 기분이 좋다.

지우는 개새끼라는 말은 개의 새끼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개는 가짜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의 ‘가짜‘ 자식을 뜻하는 멸칭이라고 했다. 지우는 거기까지 설명하더니나쁜 말이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는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개새끼, 미친놈, 씨발놈 어느 것 하나 쓸 만한 말이 없다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냐고, 왜 꼭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식으로밖에 욕을 못 만드느냐고 했다.
"참신한 욕이 필요해. 분이 풀리는 욕이 필요해."
그것이 지우의 결론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개새끼라는 단어를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개새끼. 어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로그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의 바짓자락에 붙어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P13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사람들은 나를 부정 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그녀는 댓돌에 앉은 채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픈 엄마를 버렸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땅에 묻어주지 못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래, 그런 일이 있다. 그건 항상 그랬던 일이다.
엄마의 말대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식의 생각은 오히려 그녀를 더 화나게 할 뿐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었다. 어떤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 부당한 일은 부당한 일로, 슬픈일은 슬픈 일로, 외로운 마음은 외로운 마음으로 느끼는 재능.
그래, 개성 사람들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주먹을 쥐었다. - P55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울화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사람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개성으로 오고 나서 그는 향수병에 시달렸다. 형과 누나들도 보고싶고 엄마 아버지도 보고 싶고 두고 온 벗들도 생각났다. 건너 들었을땐 꿈처럼 느껴지던 개성의 거리도 온통 시끄럽고 번잡스러울 뿐 마음을 둘 장소가 아니었다. 겨우 얻은 셋방도 가축우리처럼 느껴졌다.
버젓한 마당과 우물이 있는 고향집이 그리워 자다가도 몇 번이나 했다. 부모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했다면 여전히 그 집에서 그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았을 텐데. 자신이 잃은 그만큼을 아내는 보상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의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감사하는 마음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여자가 저렇게 뻣뻣하지? 그는 생각했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강인한 그녀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남편으로서의 일말의 권위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예감했고, 아내가 속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왜 그만큼의 대접을 안 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 거지? - P61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 P136

엄마는 나를 보며 무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엄마가 예전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에서 엄마 또한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이상없었다. 큰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 P137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그런 생각은 증조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좋다, 행복하다, 만족스럽다, 같은 표현을 하면 증조모는 부정 탄다고 경고했다. 자식이 예쁠수록 못났다고 말하고, 행복할수록 행복하다는 말을 삼가야 악귀가 질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면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늘 그런 것이었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고 따뜻함을 나누는 시간을 그대로 누리지 못하고 불안에 떨었던 것 말이다.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었으니까. 아무리 불안에 떤다고 해도, 좋은 순간을 그대로 누리지 않으려해도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으니까. - P199

그는 세상 사람들이 덜 고통받고 더 잘사는세상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발이 얼마나 부어 있는지, 가끔씩 배가 뭉칠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에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갔다. 그런 그를 볼 때면 할머니의 마음깊숙한 곳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노가 서린 웃음이었다.
스무 살 이후의 할머니를 만난 이들은 할머니를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비웃거나 차갑게 평가했으니까. 그 냉소적인 가면 뒤에상처받고 싶지 않고, 더는 울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 P221

할머니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때만 해도 세상이 그랬어.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아니었다. 시댁에 책잡혀서 좋을 게 뭐가 있니. 아버지 문제로 이미책잡힌 딸이 나 때문에 공연히 더 난감해지는 걸 바라지 않았지. 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게 미선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힌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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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개정판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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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알기어려운 것이 나다. 이제부터 집중해 생각하자고 해서 바로생각을 길어 올릴 수도 없다. 그 생각은 자칫 당시 분위기에 휘둘린 감상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생각‘하고 행동 하기보다 행동을 하면서 ‘생각‘이 따라서 정리되었다. 그때의 청승맞은 여행도 그저 생각을 비우는 역할을했을 뿐이었고, 깊은 생각은 돌아온 후 새로운 일의 가능성을 손수 알아보려고 움직이면서 비로소 자극받아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의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의 밖을둘러봐야 했던 것이다. - P19

왜 과거의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지못했을까 안타깝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 P27

‘내가 하는 이 일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 그런 건 원래 없다. 세상의 모든 의미는 내가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 P29

‘저녁이 있는 삶‘이나 ‘일과 사생활의 균형 work-life blance이라고 좋게 표현할 수도 있다. 하루 대부분의 생산적인 시간을 내가 직업으로 하는 일에 투입하는데 내 마음과 열정이 그곳에 없어 빈껍데기처럼 일한다면, 그만큼 충족되지못한 마음과 열정을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해소시켜줘야한다. 그러려면 사생활이 정말 재미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어떻게 보면 사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게 더 힘들어 보인다. 일의 문제는 그만큼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나의 삶의 질에 가장 깊숙이 영향을 주는 문제인것이다.
절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찬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의 재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는 주관적인 문제다. 일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탓하기 전에 내가 먼저일의 가능성에 기회를 줄 생각을 해보면 안 되는 것일까.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말이다. - P32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마님의 분부만 기다리겠다는 머슴 같은 대사가 그다지기쁘지가 않다. 그 말의 행간에 스스로가 가사일에 대한주인의식이 없음이 드러난다. 주도권이나 자발성, 책임을갖지 않겠다는 얄미운 선언처럼도 들린다. 그러니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협조적인‘ 비관련자의 입장으로 남고 싶다.
는 거? 뭐 하나 시킬 때마다 사랑과 존중의 마음으로 ‘부탁‘하고 일을 어설프게 끝내놓은 다음에도 반드시 ‘칭찬‘ - P83

둘째, 피하기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 대해 선입견을가지면서 근거 없이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는 사람들에대해 내가 취하는 행동이다. 성인이 되면 사회화되다 보니 미워도 웃는 가면을 쓰고상대에게 다가갈 수가 있는데 그렇게 맺는 관계는 보통 자신의 숨겨진 이기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예로 ‘당신은 내가 썩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편견 없이 잘 지낼 수 있어‘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질투심을 숨기면서 상대의 취약점을찾아내기 위해, 혹은 눈엣가시지만 적이 되느니 차라리 동맹을 맺는 게 낫겠다는 판단하에 그럴 수도 있다. 또는 상대를 지레짐작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누르고싶어 연민으로 접근하거나 그 반대로 자신의 상상 속에서이상화된 상대의 모습을 기대하고 접근한다. - P108

여자들은 결혼을 생각할 때쯤 되면 이 질문을 던진다.
"이 남자, 괜찮을까요?"
이 질문은 대개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의 조건이 석연치 않을 때 나오는 대사다. ‘돈으로 결혼 상대를결정할 만큼 난 야박하거나 천박하진 않지만, 내가 어쩌다 사랑하게 된 그 남자가 알고 보니 그냥저냥 사는 남자였으면 좋겠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그냥저냥 살았으면은, 내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정도, 혹은 우리 집보다 더 잘살더라도 그걸 빌미로 위세를(유세를 떨고) 부릴 정도는 아닌 적당한 사회경제적 차이를 말한다. 이것은 대다수 여자들이 연애하면서 품는 속내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들의 가장큰 두려움은 결혼으로 삶의 질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이다. 신데렐라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현상 유지는 해야겠다는 것이다. - P103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영혼을 괴롭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이런 사람들이 기분 나쁜 것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습성 때문이기도하지만, 상대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데 난 내 주장이 없어서 굴복당한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은 회색 지대에 놓여 있다. 나만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회의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지며 타인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같다. 그런 후 생각의 중심이 세워져 무리 짓지 않을 정도가 되면, 타인의 개인성과 존엄성도 나의 그것만큼 존중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 P181

습관적으로 집단에 흡수되어 상대편을 거부하고 미워하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NO‘의 타당성과 내용보다 누가더 격하게 NO, 를 외치냐에만 집중하게 된다. ‘NO‘를 표명한 것 자체에 이미 배불리 만족이 되다 보니 뭐가 ‘YES‘인지도 정확히 밝혀야 하는데 아무도 그에 대한 말은 하지않는다. 서로를 이해해서 접점을 찾으려고 다가가는 것조차도 타협‘이라며 지탄을 받는다. 대체 타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비겁함과 기회주의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을까. - P180

또한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자‘ 같은 1차원적인 자기암시나 구호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낫다고 생각할 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은 나 자신을 아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점을 극대화하려는 선한 에너지가 앞으로 걸어간 만큼 나를 존중하도록 만들어준다. 다시말해, 타고난 것이나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나 자신과의관계에 자존감이 좌우된다. - P203

앞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사람이 막상 나를 싫어하는것은 또 견디지 못해서 겉으로는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부단히도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썩 좋지도 않으면서 그가 내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더 강박적으로 불안해했다. 왜 나를 미워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불안감과 두려움에 더 잘 보이려고 나답지 않은 과잉 행동을 하곤 했다. 왜 그렇게 계속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던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자존감 부족을, 나의 불안정한자아를, 타인과의 관계 즉 인정 욕구로 채우려고 했다. 그러려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단 1명도 있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나를 존중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라도 인간관계가 기쁘기 위한 기본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내가좋아하는가‘ 여부이다. - P205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분위기로 흐리는 것은 부하 직원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일이다. 어떤 팀장은 팀원을 ‘친구‘로착각하여 공사 구분 없이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감정 노동을 시킨다. 본인은 권위적이지 않고 친근한 상사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팀원의 입장에선 만만한 배설 상대가 되어주는 것만 같다. 역으로 먼저 ‘인간적으로‘ 들러붙는 아랫사람이 있다면 밉기는커녕 잘해주고싶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사로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마땅하다. - P245

마지막으로, 아랫사람들에게 사사로운 인기를 얻겠다는 욕심은 버리도록 한다. 이러나저러나 아랫사람은 윗사람에 대해 불만이 있고 뒷담화‘를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봐야 하는데 - P247

"OOO(과일 이름) 먹을래?"
내가 남편에게 먼저 이렇게 물으면 그는 항상 정해진 면트로 대답한다.
"네가 먹을 거면 나도 좀 집어 먹을게. 네가 먹지 않을거면 괜히 나 때문에 깎지 마."
어쭈, 꽤나 기발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책잡히게 이래라저래라 하진 않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무임승차하겠다라.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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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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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로랑 캉테 감독의 영화 폭스파이어의 원작자였다. 폭스파이어를 봤을 땐 주인공들의 심리를, 특히 렉스의 심리상태에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대의를 잃은 반항에 명분은 없다 정도랄까?) 그런데 카시지를 읽고 나니 폭스파이어 원작을 보게 된다면 당시 영화를 봤을 땐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부 등장인물들의 성향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다소 평이해 보였다. 시장을 지낸 성공한 백인 가장 제노 메이필드와 성향이 다른 제노의 두 딸 줄레엣과 크레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인 아를렛.
제노의 두 딸 중 아름다운 미모의 줄리엣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불구가 된 약혼자 브렛과 파혼을 한다. 개성이 강하고 자유분방하나 예민하기도 한 크레시다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대학교를 다니다 우울증을 겪고, 어느 날 갑자기 친구 마시의 집을 방문한 후 로벅인에서 브렛과 함께 있는 것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이 된다.
크레시다는 미국식 언론과 사회가 실종된 여성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비된다. 가족들은 크레시다의 과거를 회상하며 회한에 잠기고, 제노는 딸이 실종된 상실감을 브렛에 대한 분노로 표출한다. 브렛의 엄마 에설은 참전용사와 전쟁 영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변호사를 고용해 제노에게 맞선다.
인물의 심리나 상황적 배경이 모두 보편적이며 진부한 미국식 현대사회의 정수를 보여주려는 것마냥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서사가 브렛에게 초점을 맞추는 순간 선과 악에 대해 복잡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거 알아? 인류는 나름의 법과 도덕을 만들어. 예수그리스도가 있었지만 그도 ’인간‘이었어-알지? 사람들보다 조금만 생각이 앞서도 법과 도덕이란 것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 건지 알게 돼. 예전 사람들은 신념을 위해-예를 들면 신을 위해, 조국을 위해-죽음도 불사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러지 않아.’(429p.)

강에 유기되어 유랑하던 크레시다를 구해준 헤일리의 말에서 우리는 도덕과 법의 기준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런 굳건한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의 판단 역시 모호할 뿐이라는, 이 책의 큰 주제를 알게 해준다.
브렛은 이라크 참전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언을 시도하다 동료 장병들에게 제거당할 뻔한 위기에 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억상실과 정신적 공황에 빠져 명예제대를 하지만 그의 인생은 예전과는 많은 것이 변한다. 자신이 입은 장애로 인한 자신감의 상실은 약혼자 줄리엣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파혼으로 이끌었으며, 민간인 학살에 대한 토막난 기억, 그리고 협박과 목숨을 위협받았던 동료들의 배신은 어느 날 로벅인에서 자신을 찾아와 접근을 시도하는 크레시다를 거부하며 몸싸움을 벌이던 도중 갑자기 찾아온 트라우마로 크레시다를 공격해 호수에 유기한다. 크레시다의 시체를 찾지도 못한 채 진실 공방 중에 벌어진 브렛의 자백 역시 이라크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억과 혼재돼 횡설수설한다. 이라크 전쟁 피해자가 크레시다를 폭행하고 유기한 가해자가 되어 인물의 선과 악을 규정지을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복잡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인물은 크레시다이다.

‘착하고 예쁜 언니가 나오는 동화가 있어요. 자매 중 하나는 축복을 받았어요. 다른 하나는 저주를 받았고요.
나는 동생이에요. 저주받은 동생.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어요-잘못을 했고 아직 바로잡지 못했지만.’(451p.)

크레시다는 자신보다 아름다운 언니 줄리엣에게 유년시절 내내 열등감을 가지고 지내왔다. 평범하게 아름다울 수 있는 언니를 넘어서려 남들과는 다르게 사고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지만 매번 좌절감을 맛보았다. 크레시다에게 사랑과 관심은 언니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었지만 주변 인물들은 쉽게 크레시다가 원하는 것을 주려하지 않았다. 빈민 학생들에게 자원봉사활동으로 수학을 가르쳤지만 학생들의 험담에 상처받고, 에스허르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며 교사에게 조롱을 받는다. 혼신을 다해 준비한 기말 리포트에서 교수의 칭찬을 절실하게 기대했지만 마감일을 지키지 않았다며 낮은 성적을 받는다.
자신은 못난이고 실패자라는 좌절감은 전쟁에서 불구가 되어 언니에게 파혼을 당한 브렛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브렛에게 다가가지만, 역시나 심리적으로 불안했던 브렛은 크레시다를 강하게 거부하며 마음을 주지 않는다.
브렛에게 유기된 크레시다는 헤일리에게 구출이 되지만 크레시다는 카시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실패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 여긴 것이다. 역시나 참전용사 출신인 헤일리와 함께 헤일리의 동생으로 신분을 위조해 마이애미에서 유랑하는 생활을 보낸다. 몇몇 일자리를 전전하던 중 까탈스러운 심리학 박사 힌턴교수의 인턴으로 들어가며 역시 그의 관심과 믿음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힌턴교수와 사형수 교도소 참관에서 힌턴교수의 미션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자신은 변할 수 없다는 체념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바뀌어 카시지로 돌아온다.

브렛과 크레시다의 충돌은 둘의 과거 경험을 비추어 보면 상처받은 영혼들의 난투극이고, 우리 사회가 브렛에게 가한 폭력과 크레시다에게 가한 편견으로 빚어진 비극의 초상이다.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이를 단순히 폭력성에만 초점을 맞춰 심판할 수 없다. 자기혐오로 빚어진 크레시다와 정치적으로 이용된 브렛의 구조적인 희생에 주목해야 한다.

“브렛은 아파, 그 역시 피해자야. 두 젊은 인생이 모두 망가졌어. 우리는 그를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해.”(589p.)
‘크레시다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인데 왜 나는 그녀를 동정할 수 없을까. 그녀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도 자신을 구하지는 못했는데.’(640p.)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단편적인 면에 국한된 판단을 하게 된다. 악에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악이 발생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구조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고 사회구성원들의 편견이 가하게 되는 집단적인 폭력을 예방하려 노력해야 한다.

‘선을 알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선을 모르면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465p.)

독서가 단순히 독해력을 높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은 사건의 단편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기사와는 달리 사건 당사자들의 심리나 감정을 서사함으로써 현상 이면에 숨은 복잡한 과정을 바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이해관계나 꼬여버린 상황들은 결국 ‘인생은 조금 앞뒤가 안 맞는 꿈’(609p.)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줄리엣가 아를렛처럼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딛고 인간은 ‘선을 알면 선한 일을 하고 싶어진다’(465p.)라 믿으며 ‘온전한 인간’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확고한 제노는 딸이 실종된 지 사십여 일이 지난 후에도 딸이 살아있다는 믿음과 브렛이 딸과 관련된 범죄로 곧 체포되리라는 믿음이 상충한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아를렛은 이 논리적 모순을 알고 있었다. 메이필드 가족의 완고한 믿음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을 동정한다는 것을 말았다. - P164

브렛의 친구들은 그에게 줄리엣 메이필드에 대해 묻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들, 그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핼리팩스, 와이스백, 스텀프.
그들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여자애나 여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어휘를 몰랐다. 그래서 여자에 대해 말할 때는 가장 천박한 어휘 외에 다른 말을 쓰지 않았다. 거시기, 젖퉁이, 궁둥짝. 끝내주게 화끈해, 걸레야.
그러니 그가 어떻게 그들에게 줄리엣에 대해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말할 수 없었다. - P202

AIDS, HIV에 감염되는 것처럼, 접촉하는 사람들을 감염시키지 않을수가 없다. 그게 악의 본성이다. - P257

그는 그녀를 실망시키기보다 죽이는 편이 더 자비로운 일임을 깨달았다.
자신을 사랑해주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들을 죽이는 편이 언제나 더 쉽다. 불만을 터뜨려 나를엿 먹이는 민간인을 죽이는 편이 더 쉬운 것처럼, 협상보다는 살인이더 쉽다. 일단 상대가 죽으면 더이상 대화의 양측 같은 건 없어지니까.
이것이 섀버 하사의 충고였다. 모든 병사가 그 말을 반복했다. 매번말할 때마다 더 우스워지는 농담이라도 반복하는 듯이. - P258

여기, 아무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고 신경쓰지도 않는 이곳에서그녀는 일말이나마 희망을 느꼈다. 친구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고, 혼자사는 것이 더 좋아서 그들과 헤어졌다. 대학에서 그녀가 이루는 ‘발전‘은 암벽등반가의 움직임과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벽에 바싹 붙어인치씩 오르느라 등뒤의 장관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 P285

운전중에 무릎 사이에 캔맥주를 끼워두고 마시며 헤일리가 말했다.
"그거 알아? 인류는 나름의 법과 도덕을 만들어. 예수그리스도가 있었지만 그도 ‘인간‘이었어 - 알지? 사람들보다 조금만 생각이 앞서도 법과 도덕이란 것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는 건지 알게 돼. 예전 사람들은 신념을 위해 - 예를 들면 신을 위해, 조국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러지 않아." - P429

조롱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여기 지상에 있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여기 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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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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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는 예민한 사춘기 소녀이지만 원만한 성격의 중학생이었고, 같은 학교 이사장의 의붓딸인 이월은 사고로 죽은 강아지 하루의 환영을 보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이다. 모루와 이월은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날, 눈이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재난 상황을 피해 학생들에 치여 쓰러져 있는 모루를 이월이 도와주면서 위기상황을 피한다.
녹지 않는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백영시가 쌓이는 눈을 소각할 장소로 선정이 되며 도시는 폐허가 된다. 모루는 이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눈 소각장에 취업을 하고, 집을 나오면서 이모와의 연락이 끊긴다. 모루의 이모는 재난 상황 이후 물자 수송을 해왔는데, 어느 날 녹지 않는 눈 속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한 의붓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이월의 주문으로 이월과 함께 백영시로 향하던 중 강도를 만나 행방이 묘연해진다. 이월은 백영시로 가는 길에 트럭기사가 모루의 이모라는 것을 눈치채고, 모루가 현재 소각장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된다. 모루 이모가 납치되기 전 이모의 도움으로 트럭에서 탈출한 이월은 소각장으로 들어가 모루를 만나게 되고, 이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던 모루는 이월에게 이모와 있었던 일을 듣고는 소각장에서 관리자 차를 훔쳐 이모를 찾아 나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한 도시를 공권력의 힘으로 폐허를 만들며, 생존을 위한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연대 같은 인간애로 삶의 의미를 찾곤 한다.

‘사실 센터나 학교나 별다를 것 없지 않나. 이곳에는 함께 대화할 또래가 있고, 센터의 생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 ...... 우리는 투덜거리면서 일을 하고, 짧은 휴식시간을 기다리고, 친구를 사귀고, 무리를 만들고, 새 직원에게 텃세를 부리고,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건 학교생활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센터에는 눈송이에 증발되지 않은 복작거림과 온기가 있었다’(76p.)

재난이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꿔놓을지언정, 인간의 습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의 삶은 불편해졌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성장해 나간다. 다른 재난상황이 와도 우리는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연대해 나갈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침묵하는 쪽의 선택지를 떠올렸다. 백모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그 믿음의 원동력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잘못된 추측이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믿는 게 중요한 것이다. 믿고 싶은 사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유진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백모루와 같았다. 믿음은 같은데 모루의 근거를 굳이 내 손으로 깨고 싶지 않았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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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 나도 모르게 쓰는 차별의 언어 왜요?
김청연 지음, 김예지 그림 / 동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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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작가가 기레기라니 선입견이 생긴다.
게다가 청소년권장도서라고 책을 반말로 쓰는 무례함이라니.
청소년을 유독 낮춰 보는 급식이란 표현을 문제삼으면서 정작 본인은 청소년들에게 반말을 일삼는 클라스가 기레기답다.

짭새라는 표현도 직업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국개, 판새, 떡검, 짭새, 철밥통 같은 은어는 특정 집단의 권위의식과 만행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표현이지, 혐오나 비하하는 용어가 아니다. 특.히. 기레기같은 거. 집단을 비하하는 용어에 인권을 들먹이며 지적질하고 싶을 땐 그 집단이 사회적 약자인가 따져봐야 한다. 그것도 아닌데 혐오표현이라 사용을 막는 건 권위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청소년 인권감수성 함양을 위한 도서는 많다.
이 책에 아까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왜 그랬느냐고? 장애인 입장에서 장애우라는 표현을 들으차별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장애인은 장애를가진 사람이란 뜻의 중립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장애우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다른 집단으로 보고 만든 비중립적 표현이거든. 더구나 이 말은 장애인 본인이 1인칭으로 사용하기 어려워. "저는 장애우입니다."라고 말할 경우, 자기 자신이 친구(友)라는 의미가 되잖아. 관점 자체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보고 있지.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처럼 장애를 인간이 이겨 내거나 재활이 필요한 대상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일 수 있어. - P75

칭찬을 담은 표현이지만 중요한 건 발화자, 즉 이 말을 한여러분의 의도가 아니라 청자, 즉 듣는 흑인의 감정이야. 게다.
가 흑인이라고 누구나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한 것도 아니거든, 결국 흑형, 흑누나란 표현 안에는 흑인에 대한 철저한 대상화, 타자화 시선이 전제돼 있지.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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