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드라이브 오늘의 젊은 작가 31
조예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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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는 예민한 사춘기 소녀이지만 원만한 성격의 중학생이었고, 같은 학교 이사장의 의붓딸인 이월은 사고로 죽은 강아지 하루의 환영을 보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이다. 모루와 이월은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날, 눈이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는 재난 상황을 피해 학생들에 치여 쓰러져 있는 모루를 이월이 도와주면서 위기상황을 피한다.
녹지 않는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백영시가 쌓이는 눈을 소각할 장소로 선정이 되며 도시는 폐허가 된다. 모루는 이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눈 소각장에 취업을 하고, 집을 나오면서 이모와의 연락이 끊긴다. 모루의 이모는 재난 상황 이후 물자 수송을 해왔는데, 어느 날 녹지 않는 눈 속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을 한 의붓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이월의 주문으로 이월과 함께 백영시로 향하던 중 강도를 만나 행방이 묘연해진다. 이월은 백영시로 가는 길에 트럭기사가 모루의 이모라는 것을 눈치채고, 모루가 현재 소각장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된다. 모루 이모가 납치되기 전 이모의 도움으로 트럭에서 탈출한 이월은 소각장으로 들어가 모루를 만나게 되고, 이모와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가 타던 모루는 이월에게 이모와 있었던 일을 듣고는 소각장에서 관리자 차를 훔쳐 이모를 찾아 나선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에도 인간의 삶은 계속된다. 한 도시를 공권력의 힘으로 폐허를 만들며, 생존을 위한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연대 같은 인간애로 삶의 의미를 찾곤 한다.

‘사실 센터나 학교나 별다를 것 없지 않나. 이곳에는 함께 대화할 또래가 있고, 센터의 생활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 ...... 우리는 투덜거리면서 일을 하고, 짧은 휴식시간을 기다리고, 친구를 사귀고, 무리를 만들고, 새 직원에게 텃세를 부리고,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건 학교생활과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센터에는 눈송이에 증발되지 않은 복작거림과 온기가 있었다’(76p.)

재난이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꿔놓을지언정, 인간의 습성을 바꾸지는 못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의 삶은 불편해졌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성장해 나간다. 다른 재난상황이 와도 우리는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연대해 나갈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침묵하는 쪽의 선택지를 떠올렸다. 백모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그 믿음의 원동력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잘못된 추측이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믿는 게 중요한 것이다. 믿고 싶은 사실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유진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는 나의 믿음은 백모루와 같았다. 믿음은 같은데 모루의 근거를 굳이 내 손으로 깨고 싶지 않았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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