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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션 2.0 - 어느 소심한 구글 직원이 이끈 혁명이야기
와엘 고님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대학 시절 <한국정치사> 강의를 수강할 때 교수님이 인상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교수님은 동학혁명을 전문으로 연구하신 그 분야의 귄위자셨는데, 한 프랑스 정치학자가 쓴 책에서 ‘혁명이 발생했을 때 수도의 중앙군이 도보로 하루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서는 성공이 불가능하다’라고 쓴 것을 보고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라고 개탄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혁명의 원인이나 배경, 전개 과정에만 집중해서 사료적인 결과물들을 일차적으로 모으고, 그것들을 토대로 정리하고 빠진 부분들을 추측으로 보충하고, 그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분석과 해석 작업을 하는 역사학적인 방법에만 치중하다보니 혁명의 사회적,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고찰이 빠져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교수님의 깨달음처럼 혁명은 단순히 동기와 전개만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사회적인 현상이고, 필연성에 못지않게 우연성에도 많이 지배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만큼 혁명이 일어난 그 시기에 해당 국가나 사회가 위치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여건이 혁명의 전개와 성공 여부에 미치는 외부적인 영향은 어떤 위미에서는 매우 크고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휴대폰이 대중화되면서 5,16이나 10.26 때 같이 밤중에 전방에서 탱크를 몰고 서울로 들어오는 쿠데타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하곤 하는 것은, 군부대의 유무선 통신보다 이동 광경을 목격한 일반인들의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이용한 소식이 훨씬 더 빨리 전해지기 때문이지요. 정부의 정보통신 포착과 전달 능력이 가장 앞서있는 미국에서조차도 사건이 일어나면 정보부서의 보고보다 CNN 채널을 먼저 트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니까요.
가장 최근에 발생한 혁명인 작년에 아랍권에서 발생한 일명 ‘자스민 혁명’은 이런 IT 기술로 변화된 사회에서의 혁명의 전개 과정을 가장 적절하고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와엘 고남이 쓴 <레볼루션 2.0 – 당신은 또 침묵할 것인가>는 바로 이러한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전달해주는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와엘 고님은 이집트 출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 자랐고, 카이로 대학 졸업 후 2008년 구글에 입사해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와엘 고님은 2010년 여름에 한 이집트 청년이 경찰에 구타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죽음에 분개해 사건의 발생을 알리며 인권과 정의를 호소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인터넷에 개설했습니다. 그 페이스북 페이지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소식을 주고받게 되면서 이 사이트는 자연스럽게 온라인 저항운동의 중심이자 상징이 되었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던 100만명이 넘는 이집트 젊은이들은 2011년 1월 25일에 마침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가득 메우며 민주화를 외치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고님은 이집트 국가보안국에 체포되어 지하감옥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11일 만에 풀려나 TV 프로그램에서 혁명을 호소했고, 나흘 후인 2월 11일에 마침내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함으로써 철옹성같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역사의 한 장이 새롭게 씌여졌습니다.
고님은 이 책에서 이러한 자스민 혁명의 전개 과정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들과 그 사이사이의 상세한 서술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섞어서 매우 생생하고 자세하며 흡입력있게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카리스마있는 지도자가 민중들을 이끄는 과거의 혁명 방식이 <레볼루션 1.0>이었다면, 집단지성이 이끈 자발적인 방식을 <레볼루션 2.0>이라고 표현하며 인터넷과 IT가 탄생시킨 집단지성이 이끄는 새로워진 세계와 사회를 이야기합니다.
올해 여름 초대형 태풍이 우리나라를 향하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들에서는 상시적으로 방송되는 뉴스의 태풍속보가 감히 따라오지조차 못할 만큼의 방대한 정보와 지식들이 소개되고 교환되었습니다. 그 결과 역대급의 어머어마한 초대형 태풍임에도 수도권에서는 거의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기적적인 일이 발생했고, 상대적으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부실한 지방에서는 상당한 피해가 발생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교류의 막강한 위력을 실증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이 정부에 들어와서 MBC와 YTN을 필두로 기전의 언론사들은 정부의 스피커로 전락하여 인기없는 드라마 수준의 시청률과 영향력 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중동문으로 대변되는 보수 언론의 몰락도 오히려 이 정부에 들어와 가장 빠른 붕괴 속도를 보여주고 있고요. 이것은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폭넓은 인터넷과 IT 문화를 보유한 우리나라의 가장 큰 강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기성세대가 주류인 오프라인 사회와 40대 이하 IT 세대가 중심인 인터넷 세상은 완전히 다른 나라처럼 되어 버렸지요.
이 책의 부제인 <당신은 또 침묵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새로운 선택이 불과 한 달 보름 여로 다가온 현재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고 있고요.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