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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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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주변이 부담스러웠을까,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일까?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대중들로서는 반겨야할 일이지만 과연 부자나 기업들이 순순히 정부의 부탁(?)을 들어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래퍼곡선을 창안한 아서래퍼는 증세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는 위린 버핏을 위선자라 언급하며 두루뭉술한 정부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래퍼의 이론은 돈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금이 줄어든다고 부자나 기업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간교하게 세금을 줄일 방법을 강구할 것이며 이는 정부가 목적한 증세의 기대효과와는 달리 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증세는 감세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래퍼는 버핏이 말로만 증세를 주장하지 말고 절대적인 세금기준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버핏의 위선적인 선행(?)을 꼬집는다. 워린버핏의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소비는 경제성장의 주춧돌이다. 올바른 소비는 저축과 더불어 가계와 기업에 큰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무분별한 소비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소비는 인간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일쑤다. 흔히 탐욕이라 불리는 인간의 욕망은 항상 거대한 거품을 양산해왔다. 자유개발 경제체재 하에서의 소비는 성장의 견인 돌로 미덕이란 칭호까지 받아왔다. 하지만 과도한 소비를 떠받들고 있었던 건 부채뿐이었다. 제조업 지수의 하락, 실업률 상승, 소비지수 하락, 의심하지 않아도 미국경제의 침체는 이미 예견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신용사회를 부추기며 과도한 부채를 권장한 정부와 기업의 입장은 더욱 애매모호하다.

성장 없는 경제는 죽은 것일까? 경제의 근원적인 목적은 오로지 성장에 대한 환상과 이윤추구뿐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의 난립이 성장에 그토록 필요한 도구였을까?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금융장세는 세계경제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든든한 배경을 완성시켜준 것은 소비를 통한 탐욕이었다. FRB와 미국정부는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 시장에 풀면 경기가 저절로 회복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토록 믿었던 시장의 역할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편협한 믿음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것이란 믿음 못지않게 미국인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을 일거에 무너뜨린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배신’은 우리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실패를 거듭한다고 경제시스템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며 화폐경제의 불합리성 때문에 돌연 물물교환의 시대로 회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선적으로 경제학적 명제를 새롭게 고찰할 필요를 느낀다. 그토록 믿었던 경제학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가? 합리적인 시장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상황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빈과 부의 격차는 더욱 격심해지고 사회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우린 인간이 아닌 인격체로서 자본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다. 시장자본주의는 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특권층을 위한 통제 권력으로 바뀌어버렸다. 통제적이고 일률적인 시스템 하에서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은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의 배신은 통치자가 되어버린 시장의 비합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이면에 감추어진 기업들의 반사회적 인격이 어떻게 공공재의 기능을 무너뜨리는지를 기업의 윤리관(?)과 대중의 무관심을 통해 직접적으로 고찰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경제학은 대중의 방관위에서는 아무런 가치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전환을 요구한다. 시장이나 돈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경제의 참다운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오직 이윤과 편익에 중심을 두었다면 이젠 경제학적 철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양적팽창으로 풀려는 것 보단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경제학이 탄생할 주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자신이 보고 가는 길은 정상이라 말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경제학의 허상은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우기는 ‘안톤의 실명’과 흡사하다. 대중의 눈을 무시하고 소수의 판단이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정책적 논리는 그들 앞에 놓인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오직 경제학은 참다운 정치 기반에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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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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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스톰이 닥칠 것이다.’ 대표적인 비관론자 루비니 교수는 미국재정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경고한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일본의 장기침체, 무엇보다도 EU의 재정혼란은 루비니의 경고를 더욱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 재무장관 루빈은 루비니의 경고를 한방에 일축한다. 그는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로 미국재정을 좌우해온 인물이다. 재정에 관한한 루빈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지만 세계 언론은 루비니의 경고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유독 한국 재정정책은 루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좋은 것이 될지 알순없지만 ‘블랙스완’ 이라 일컫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언제든 우릴 파국으로 몰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은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이제 세계는 평평해진 단계를 넘어서 운명의 공동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섣부른 판단을 해본다. 과연 패권국 미국은 다시 한 번 황소처럼 세계를 리드해 갈 수 있을까? 마치 무주공산인 듯한 세계정세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만리장성에 갇혀있는 듯하다. 세계경제는 중국만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과 부패라는 극과극의 모습을 지닌 중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달러와 원자재를 흡수한다. 이미 제조업과 금융서비스업으로 재미를 본 미국처럼 그들도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엄청난 도박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담비사 모요는 ‘미국의 파산하는 날’을 통해 거시경제학을 중심으로 미국이 어떻게 쓰러져가고 있는지를 꾸밈없이 서술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녀는 미국의 정체성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제 그 과도한 탐욕과 가치관이 스스로를 어떻게 파산시키고 있는지 역사적 자료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 담비사는 자본주의로서 미국은 파산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섬뜩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자본의 분배’ 에 관한 그녀의 이론은 잘못된 미국의 재정정책을 과감히 깨부순다. 자본이 고유의 목적인 생산적인 투자를 벗어나 주택과 같은 수익성이 낮은 ‘편의적 자산’으로 대체되었고 가치가 없는 주택가격을 올리기 위해 무모하게 펼친 금융정책이 결국 미국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주택을 부양하기위해 특별한 금융정책을 시도했다. 저금리, 무분별한 대출, 신용카드등을 이용한 무제한적인 ‘빚’을 양산한 것이다. 빚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금융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파생상품은 빚의 마지막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었을까? 무제한적인 달러공급은 미국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뇌관이다. 중국이 이타적이라 미국을 위해 달러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중국 역시 생산품을 판매하기위한 공급처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미국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는데 더할나위없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되지못할 치킨게임이 될 확률이 크다. 최소한 그들은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다. 드러나진 않았어도 그들의 성공이 ‘전쟁’과 관계가 없다고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담비요는 전쟁으로 부유해진 국가가 힘을 잃어간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패권국으로 만드는데 절대적이었다. 당시 미국을 일으켰던 주인공은 ‘제조업’이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의 위상은 영원히 지속될 아메리카 드림을 완성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추구해왔던 세계화는 일순간 세계를 장악할 순 있었지만 신흥국가들의 성장은 더 이상 미국의 독주와 독단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2008년, 세계는 분명하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담비사는 경제학자다. 그녀의 이론은 경제학이 추구하는 시장의 원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즉, 시장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후 미국은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통계수치는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정계를 움직이고 있는 관료들의 목소리가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다. 담비요의 도전을 보면서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미국에 좋은 것이면 한국에도 좋은 것일까? 미국정책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지만 이를 무분별하게 따라하는 풍토는 더욱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미국은 진정 파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 G2를 중심으로 한 담비요의 경제정책, 미국 파산시나리오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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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것의 가격 -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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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른 게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오일쇼크의 재림인가?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식량쇼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경고한다. 식량쇼크는 오일쇼크를 능가하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생존기반을 무너뜨릴 만큼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프랑스등 식량 자급률이 높은 국가들은 서둘러 곡물 수출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개도국의 소비와 인구증가는 식량문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 G20, 다보스 포럼등 세계 국제회의나 기구들은 식량위기를 최대 주요논제로 다룰 예정이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만큼 성숙했다고? 시장의 원리에 인류의 미래를 맡긴다고? 경제학은 원리부터 다시 써야할 판이다.

잠잠했던 물가가 갑자기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살인적인 물가는 이미 유럽과 미국에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다. 물가를 잡지 못한 국가나 도시는 심각한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물가는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인간의 모든 상황이 가격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은 가격의 지배권 하에서 가격의 통제를 받고 가격에 의한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적으로 가격은 인간의 우위에 있다. 우린 물가를 이해하기 전에 가격정책이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가격은 인간을 위한 대체수단에 불과했지만 다른 많은 기재들처럼 인간사회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원래부터 가격이 가치를 산출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시대 이래 수백 년 동안 가격에 대한 가치 분석은 도덕에 대한 연구를 출발점으로 시작했다. 당시 가격은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출현과 원죄개념은 가격의 유동성을 더욱 확장시켜 놓았다. 사물은 물론 인간의 죄에도 가격을 매기는 면죄부를 시판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노동의 가치로 환산이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마르크스는 가격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분석하여 새로운 가격혁명을 일으킨다. 하지만 19세기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달리 사물은 절대적이거나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대적 가격과 상대적 가치의 주관적인 성질이 새롭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후 가격은 빠르게 세상을 점령해나가며 스스로 지위를 획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격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스스로에게 가격을 매길 수 없다고 말하지만 911사태 후 희생자보상기금을 통한 희생자의 가격은 우리가 생각과는 다른 가격의 이중성을 알 수 있다. 희생자 가족은 경제적 손실과 비경제적 손실에 따라 보상금액을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적 손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한정짓느냐는 부분에서 극렬한 논쟁을 벌였고 결국 부유한 몇몇은 소송을 통해 더욱 많은 보상금을 가져갔다고 한다. 인간의 연령, 임금, 사회적 지위, 가족의 수를 일률적으로 보상금액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보상금액을 넘을 수 없다는 논지는 인간의 가격이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의 가격’은 우리의 삶이 가격에 의해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물이나 노동의 가격만이 물가의 지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린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격으로 정해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더불어 여성의 가격(가치)는 빠르게 증가한다. 문화의 발달은 콘텐츠의 확보를 증가시켜 새로운 가격을 창출시킨다. 또한 당신이 믿는 신앙에 대한 가격은 얼마인가? 행복은 돈과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부유한 사람일수록 행복하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많다. 가격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모든 을 통제한다. 가치가 높을수록, 수요가 많을수록, 희소성이 강할수록 가격은 강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지금가지 살아온 경력과 미래의 잠재력을 통해 예상되는 가격을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국가나 기업이 가격정책을 실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도 가격정책을 실패한다면 참담한 시기를 보내야할 것이다. 세상은 평평해졌다고 자랑하지만 인간은 너무 쉽게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가치 대체재를 우상화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린 가격의 통제 하에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며 살아간다.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가격을 더욱 높일 수단을 강구한다. 결국 가격은 원시족을 이끌었던 황금동상과 같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자본주의가 득세할수록 가격은 더욱 더욱 우리의 삶을 옥죌 것이다.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가격의 모든 것, 에두아르도 포터의 The Price of Everything 을 적극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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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테이너블 엑설런스 - 미래를 선점하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코드
아론 크래머.재커리 캐러벨 지음, 이진원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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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 안을 살펴보자. 옷장엔 철지난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그 옆을 채우고 있는 건 언젠가는 사용하리라 마음먹었던 물건을 넣어두었던 박스들이다. 박스엔 추억보단 자욱한 먼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니 필요한 일이 있더라도 철지난 옷과 먼지 수북한 박스를 열어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세련되고 멋진 옷과 공구 혹은 제품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은가? ‘소비’에 관한한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에선 오히려 소비가 줄어들까봐 걱정하고 있지 않는가?

생산과 소비에 관한한 중국은 할 말이 많은 국가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이 가공할만한 성장을 이루는 동안 배출했던 환경오염물질의 기준을 새롭게 자국에게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껏 이용해놓고 이제 와서 당신은 안 된다 라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감정을 자극하는 것밖엔 안 된다. 이들의 염려(?)와는 달리 중국은 처음부터 환경오염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중국정부는 양쯔, 황허등 대륙을 관통하는 젖줄을 폐수로 오염시키면서까지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다. 또한 가공할만한 생산기지가 되어 세계의 원자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미 세계의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국의 농촌, 폐기물 때문에 질병이 창궐하는 도시주변, 이제 부패한 관료들조차 이대로 가서는 누구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에게 성장은 삶의 지표와도 같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환경오염이 결국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국적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포함되어있다. 성장이 과연 모든 것을 해결해줄 만능의 열쇠일까? ‘서스테이너블 액셀런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탁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는 기업들이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1987년 노르웨이 수상을 지냈던 하람 브룬트란트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 이라 정의를 내렸다.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이 말을 실천하는 기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기업들의 경영방식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무슨 말이든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면 ‘자유자본주의, 시장원리’를 내세우고 불리한 상황이 되면 언제 그랬나는 듯이 공적자금에 사활을 건다. 한마디로 경쟁보다는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론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글로벌 기업들이 에코매지네이션 운동으로 턴을 하고 있겠는가? 그들은 보다 근접한 거리에서 소비자를 상대하길 원한다. 리더십에 대한 재발견, 경영 방식의 재고찰, 무엇보다 기업을 이끌 새로운 가치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부각 되고 있다. 서스테이너블 엑셀런스는 최근에 첨예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동반성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어떤 상황이든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없듯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다면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세계는 빠르게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이제 누구도 하나의 개념이나 이론만으로 상황을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둘러싼 애플과 삼성간의 글로벌 다툼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구글이 어떻게 특허권을 알지 못하고 삼성에 판매를 했을까? 결국 문제는 애플의 위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글로벌 시장엔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 단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첨예한 경쟁과 까다로운 법적인 절차만이 남겨질 뿐이다. 지속적인 탁월함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기 보다는 생존이 가능한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탁월함을 보여주는가? 하루아침에 수조원대의 기업들이 몰락하는 현실에 기업의 성장 코드는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조건이 될 것이다. 2020년을 선도할 한국 기업들은 어떤 기업들일까? 그들은 과연 지속가능한 탁월성을 지니고 있을까? 서스테이너블 엑셀런스를 통해 그 해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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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메디치가의 색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책입니다. 부와 권력을 손안에 쥔 유럽 최고의 가문, 그들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었을까요?  

중세시대의 화려한 귀족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귀족들의 모습을 투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공부법’에 대한 해석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 주를 이루더니 최근엔 토론을 중심으로 한 학습이 고개를 들고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그리 많은 학생 수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어렸을 적부터 대화나 토론 학습을 병행하지 않는지 교육의 현실적인 문제가 지속적으로 머리를 지끈거리게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하버드만의 교육방법, 지표로 삼아도 좋을만한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믿지말고 의심하라! 그리고 검증하라! 

당신의 투자 상식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고전처럼 들리는 이유는 우리들의 투자습관이 맹목적이지 않나를 반성케합니다. 캔 피셔의 투자의 재구성도 무척 기대되는 책입니다.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사회주의의 붕괴, 하지만 자본주의의 불완전성이 더욱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 출간된 책으로 알고 있는데 새롭게 조명되는 것을 보면 휴버먼의 통찰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구조와 이념의 탄생, 과연 자본은 어떻게 자가증식을 멈출것인가?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만알 수 있는 가치있는 책이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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