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투르게네프의 단편에 수레국화가 나와서 찾아보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한다. 개양귀비도 함께. '스완네 쪽으로' 중 1부 '콩브레'의 2장이 출처이다.

Image by DerWeg from Pixabay







나는 울타리 뒤쪽, 들판 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비탈까지 올라가 홀로 길을 잃은 듯한 개양귀비와 게을러터져 뒤처진 몇 송이 수레국화 뒤를 쫓아갔는데, 그것들은 마치 벽 위에 요란스럽게 걸린, 전원풍 주제를 드문드문 수놓은 벽걸이의 테두리같이 그 비탈의 여기저기를 장식했다. 벌써 마을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외딴집들처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그 꽃들은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솜덩이 같은 흰 구름이 피어 있는 광야를 내게 알려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래된 찬란한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지금의 자신과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살림지식총서 '비잔틴제국'(진원숙)으로부터 아래 글을 옮긴다.

콘스탄티누스 1세. 손에 든 것은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콘스탄티노폴리스 [Constantinople, Constantinopolis, Konstantinu Polis]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4115&cid=42635&categoryId=42635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330년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로 제국의 수도를 옮긴 뒤 제국의 중심이 동방으로 이동했고, 특히 제국이 분열된 이후 동방은 고전문화를 창조한 그리스를 중심으로 독자적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살림지식총서 '오스만제국: 지중해의 세 번째 패자'(진원숙)의 2장 '비잔틴제국 정복 이후의 오스만제국' 중 '술레이만대제와 오스만제국의 전성기'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Sultan Suleyman the Magnificent Wearing the Jewel-Studded Helmet (위키미디어 커먼즈) cf.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38723 엄청난 왕관이다.


술레이만 1세 Suleyman Ⅰ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v081mc942a4





셀림 1세가 치세할 때 오스만제국은 주로 동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했고, 결국 시리아와 이집트를 병합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외아들 술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는 유럽 쪽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술탄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이지 않았고, 따라서 국력을 낭비하지 않고 순탄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전에 손톱에 관한 내용을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화장술의 역사'에서 찾아보다가 아래 글을 발견했었다. 

사진: Unsplash의 Pablo Escobar


샤토브리앙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1s3256a






"1822년, 멋쟁이라면 불행한, 병든 모습을 보여야 했다. 길게 자란 손톱, 기른 것도 짧게 깎은 것도 아닌, 어느 순간 갑자기 자라 버린 듯한 수염, 이처럼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들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심오하고 고귀한, 방황하는 듯한 비장한 눈길, 인류에 대한 경멸로 일그러진 입술, 존재에 대한 신비감과 혐오감에 사로잡힌, 바이런과 같은 고뇌하는 심장을 지녀야 했다."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에서의 회상》

저자 도미니크 파케:배우이자 연극 관련 저서들을 출판했으며 1984년부터 화장과 미용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화장이라는 연금술》을 출간한 바 있으며, 무대 분장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철학과 연극의 관계에 대해서도 학문 분야를 넓히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투르게네프 단편집'의 '만남'을 읽었다. 착한 여자와 나쁜 남자의 만남을 화자(나)가 숲에서 목격한다.

Young Man with Cornflower, 1890 - Vincent van Gogh - WikiArt.org 이 청년이 물고 있는 꽃이 수레국화이다.







"이건 야생 마가목 꽃인데,(그녀는 다소 생기를 되찾은 듯 말했다.) 송아지들에게 좋아요. 그리고 이건 전륜화인데, 종기에 좋아요. 그리고 이것 좀 보세요.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꽃은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건 물망초, 이건 향기 나는 제비꽃… 그리고 이건 당신 드리려고… 맘에 들어요?"

그녀는 노란색 마가목 꽃들 사이에서 가느다란 풀로 엮어진 작은 하늘색 수레국화 다발을 꺼냈다.

빅토르는 천천히 팔을 뻗어 그것을 받아 들고 냄새를 맡아보더니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무슨 대단한 생각에나 잠긴 듯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는 수레국화 다발을 풀밭에 떨어뜨렸고, 외투 주머니에서 청동 테의 손잡이가 달린 안경을 꺼내서 쓰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눈썹을 찌푸리고 뺨에다 코까지 실룩거리며 써보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유리알이 빠져 그의 손으로 떨어졌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수레국화 다발을 집어 들고 숲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왔다. 해는 다소 뿌옇지만 맑은 하늘에 낮게 머물러 있었다. 햇살은 다소 빛이 바랜 차가운 느낌이었고, 눈이 부시지도 않았으며, 거의 물빛으로 아주 고르게 펼쳐져 있었다. 저녁까지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건만, 석양은 이제야 겨우 물들 채비를 시작하는 듯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불쌍한 아쿨리나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그녀의 수레국화 다발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지만,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 - 만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