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수레국화와 개양귀비(꽃양귀비)가 제철인 듯하다. 꽃들을 볼 수 있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찾아봐야겠다.

Image by Ingeborg from Pixabay








그 라일락, 그 아가위, 그 수레국화, 그 개양귀비, 그 사과나무들이 있던 메제글리즈 쪽과, 올챙이가 우글거리는 냇물, 수련과 미나리아재비 등이 있던 게르망트 쪽은 내가 살고 싶어하는 고장―나는 그곳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낚시를 갈 수 있어야 하고 보트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고딕풍 요새의 폐허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생탕드레 데 샹 성당처럼 밀밭 한가운데 거대한 짚더미 같은 시골풍 금빛 성당이 있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생각을 갖고 있다―의 모습을 나를 위해 영원토록 이루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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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투르게네프의 단편에 수레국화가 나와서 찾아보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한다. 개양귀비도 함께. '스완네 쪽으로' 중 1부 '콩브레'의 2장이 출처이다.

Image by DerWeg from Pixabay







나는 울타리 뒤쪽, 들판 쪽으로 나 있는 가파른 비탈까지 올라가 홀로 길을 잃은 듯한 개양귀비와 게을러터져 뒤처진 몇 송이 수레국화 뒤를 쫓아갔는데, 그것들은 마치 벽 위에 요란스럽게 걸린, 전원풍 주제를 드문드문 수놓은 벽걸이의 테두리같이 그 비탈의 여기저기를 장식했다. 벌써 마을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외딴집들처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그 꽃들은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솜덩이 같은 흰 구름이 피어 있는 광야를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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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찬란한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지금의 자신과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살림지식총서 '비잔틴제국'(진원숙)으로부터 아래 글을 옮긴다.

콘스탄티누스 1세. 손에 든 것은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콘스탄티노폴리스 [Constantinople, Constantinopolis, Konstantinu Polis]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64115&cid=42635&categoryId=42635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330년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로 제국의 수도를 옮긴 뒤 제국의 중심이 동방으로 이동했고, 특히 제국이 분열된 이후 동방은 고전문화를 창조한 그리스를 중심으로 독자적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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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오스만제국: 지중해의 세 번째 패자'(진원숙)의 2장 '비잔틴제국 정복 이후의 오스만제국' 중 '술레이만대제와 오스만제국의 전성기'가 아래 글의 출처이다.

Sultan Suleyman the Magnificent Wearing the Jewel-Studded Helmet (위키미디어 커먼즈) cf.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38723 엄청난 왕관이다.


술레이만 1세 Suleyman Ⅰ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v081mc942a4





셀림 1세가 치세할 때 오스만제국은 주로 동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했고, 결국 시리아와 이집트를 병합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외아들 술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는 유럽 쪽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술탄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벌이지 않았고, 따라서 국력을 낭비하지 않고 순탄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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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손톱에 관한 내용을 시공디스커버리총서 '화장술의 역사'에서 찾아보다가 아래 글을 발견했었다. 

사진: UnsplashPablo Escobar


샤토브리앙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1s3256a






"1822년, 멋쟁이라면 불행한, 병든 모습을 보여야 했다. 길게 자란 손톱, 기른 것도 짧게 깎은 것도 아닌, 어느 순간 갑자기 자라 버린 듯한 수염, 이처럼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들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심오하고 고귀한, 방황하는 듯한 비장한 눈길, 인류에 대한 경멸로 일그러진 입술, 존재에 대한 신비감과 혐오감에 사로잡힌, 바이런과 같은 고뇌하는 심장을 지녀야 했다."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에서의 회상》

저자 도미니크 파케:배우이자 연극 관련 저서들을 출판했으며 1984년부터 화장과 미용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 《화장이라는 연금술》을 출간한 바 있으며, 무대 분장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철학과 연극의 관계에 대해서도 학문 분야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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