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로부터

시바 료타로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1845a 시바 료타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일본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2009) 광고 by Kentaro Iemoto from Tokyo, Japan - ANA B767-300(JA8342), CC 表示-継承 2.0, 위키미디어커먼즈



나는 좀 사정이 있어 ‘무라카미 하루키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원고’를 모 신문에 다섯 차례나 썼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번도 지면에 실리지 못했지만요. 이런 글은 수상이 정해지고 나서 부탁하면 늦기 때문에 원고를 미리 준비해둡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때마다 한 달 전쯤 "올해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니까 원고를 부탁드려요." 하는 연락이 옵니다. "작년 원고를 실을까요?" 하고 묻기에 "아뇨, 새로 쓸게요." 하고는 올해도 축하 글을 썼습니다. - 제2강 하루키가 문학의 ‘광맥‘과 만난 순간

문학을 ‘내향’과 ‘외향’으로 나누는 것은 별 의미 없는 구분이지만, 굳이 나눈다면 시바 료타로의 문학은 ‘내향’입니다. 그것은 시바 료타로가 일본인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글로 썼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기 쉽고 명료하고 논리적인 글이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해도 읽기 쉬운 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딘가 외국인 독자에 대해서는 ‘문이 닫혀 있는’ 느낌입니다. 그것은 시바 료타로가 결국 ‘우리 편 이야기’를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 편은 욕할 수 없습니다. 우리 편의 수치는 겉으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런 억제가 작동합니다.

시바 료타로의 문학은 일본인을 위한 것입니다. 일본인을 보듬어 안고 혼내고 격려하고 이끌어줍니다. 국민을 상대로 쓰는 글입니다. 물론 훌륭한 스케일의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외국인 독자는 ‘자기의 독자로 상정하지 않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눈치 챌 수 있습니다. - 제6강 세계문학, 하루키는 되고 료타로는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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