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파우스트 1부의 여주인공인 그레트헨의 모델을 수잔나 마르가레타 브란트에서 가져오고 있다.
브란트는 프랑크푸르트 지역의 하층계급 출신의 여성으로 1772년 영아 살해범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3류 여관의 하녀로 일하던 브란트는 1770년 말, 여관에 숙박하던 한 남성에 의해 임신하게 된다. 그녀가 그를 유혹했는지, 아니면 성폭행당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1771년 8월 1일 밤에 브란트는 여관 옆 허름한 곳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죽인 후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도망친다. 그러나 곧 다시 잡혀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다가 결국 사형당한다.
브란트의 재판에는 괴테의 외조부와 친척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브란트에 관한 심문조서의 일부가 후에 괴테의 집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괴테는 ‘그레트헨의 비극’ 속에 왜 발푸르기스의 밤을 포함시켰는가?
‘그레트헨의 비극’에는 영아살해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근대 초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자행된 마녀사냥의 문제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영아 살해범은 결국 악마와 결탁한 마녀라는 당시의 통념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이것이 ‘그레트헨 비극’의 한 축이 된 것이다.
근세 초기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자행될 때, 대다수의 여성들은 실제로 마녀라기보다는 심한 고문과 강요된 자백 속에서 마녀라는 프레임으로 낙인찍히고, 결국 화형대에서 처형당했다.
그레트헨 역시 영아 살해범의 마녀라는 낙인 속에서 처형당했음을 역추적해 볼 수 있다.
그레트헨의 비극을 통해 남성의 무책임한 성적 쾌락의 질주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가해자-피해자의 구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마녀사냥의 잔혹성에 대해 폭로한 것이 괴테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대문호로 평가받는 괴테가 파우스트의 세상 경험과 세계 섭렵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그레트헨을 희생했다는 비난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출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605997 「발푸르기스의 밤」과 마녀 - 괴테의 「파우스트 1부」를 중심으로 2020, vol.28, no.2, 통권 89호 pp. 89-110 (22 pages), 독일어문학, 송희영
Walpurgis' Night, engraving after an illustration by Johann Heinrich Ramberg, 1829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