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 지상의 주민들 / 화이트 크리스마스
전쟁 이후의 크리스마스 시즌이 무대인 로맹 가리의 단편 '지상의 주민들'을 마저 읽는다. 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실려 있다. 그들은 눈을 맞으며 함부르크로 가는 중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네이버 지식백과] 함부르크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1590&cid=40942&categoryId=34078
함부르크 2012 By Nicolas Vollmer from Munich [Allemagne] - Marché de Noël du Rathaus, CC BY 2.0, 위키미디어커먼즈
Christmas greetings 1905 from Hamburg (Germany) By Vitavia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어둠이 점차 그들을 감쌌고, 하늘에는 눈송이 대신 별들이 들어찼다. 남아 있던 까마귀들이 반쯤 잠든 채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고 나자, 달이 떠올라 사태를 조금 정돈하며 어둠을 누그러뜨려주었다. 트럭 한 대가 또다시 지나갔다. 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을 똑바로 비추었다가는 무심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큰 기대를 걸었고, 크리스마스 상품들과 자신이 입을 의상을 사는 데 상당한 돈을 투자했지만 빨간 모자와 하얀 수염을 달고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어도 두 사람의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었다. 대도시 함부르크에서는 상황이 나아질 터였다. 그랬다, 그들은 함부르크로 가는 길이었다.
아시다시피 이 어린것은 금간 유리처럼 면으로 싸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난 이애에게 무슨 말인가를 할 때 몹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것을 언제나 밝게 묘사하지요. 폐허나 군인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빨간 기와에 채소밭이 딸린 아담한 집들과 친절한 사람들만 사방에 있다고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난 무슨 얘기든 그녀에게 할 때만은 조금 낭만적으로 한답니다. 타고난 낙관주의자인지라 그런 일은 내게 잘 어울리지요. 난 사람을 믿어요. 그래서 언제나 이렇게 말하죠. 사람을 믿으세요, 그러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백 배로 보답해줄 겁니다, 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난 낙관주의자예요. 우리 인간들은 말이죠, 아직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겨우 출발했을 뿐이니까, 나아가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어떤 존재가 될 겁니다. 난 미래를 믿어요.
그는 손을 들어 눈송이 하나를 잡았다.
"네가 이걸 볼 수만 있다면" 하고 그는 감탄을 연발했다. "이번엔 진짜 눈이란다! 내일은 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야. 모든 게 하얗고 새롭고 깨끗할 거야. 자, 가자꾸나! 거의 다 왔을 거야."
"가자" 하고 남자는 쾌활하게 말했다. "이제 다 왔단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하얀 밤 속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