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노명식 지음)의 '제4장 부르주아 공화국' 중 '3. 브뤼메르 18일 쿠데타'로부터 옮긴다.
브뤼메르 쿠데타 - Daum 백과
나폴레옹에게 바치는 송가 1799 암스테스담 국립 미술관 By Rijksmuseum - CC0
보나파르트야말로 프랑스와 유럽에 다시 평화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졌다. 그가 이집트에서 귀국했다는 소식이 파리에 전해진 것은 10월 13일이었다. 파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미 쿠데타에 의한 정권 쟁취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누구와 손잡을 것인가만 신중히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야심과 시에예스의 계획이 들어맞았다. 나폴레옹에게 기대되고 있는 전면적 평화와 시에예스가 계획하고 있는 개헌 계획이 결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폴레옹과 시에예스는 모로 장군, 노회한 탈레랑, 경찰 장관 푸셰, 법무 장관 캉바세레스Jean Jacques Régis de Cambacérès, 그리고 500인회 의원들과 결탁하는 데 성공하였다. 만반의 준비가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거사의 날은 공화 8년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로 정해졌다.
1799년 11월 9일 쿠데타가 일어났고, 12월 25일 나폴레옹을 통령으로 하는 통령정부가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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