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콤베는 이탈리아어 카타콤바의 복수형이고, 영어로는 카타콤-카타콤즈이다.
아래 옮긴 글의 출처는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이탈리아 공인건축사 정태남의 로마 역사 기행' 중 '5. 로마제국 후기 - 종말과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의 '카타콤베_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곳'이다. 이 책은 다음백과에 제공되고 있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36XX47700036 참고.
Roma, Catacombe di San Sebastiano (Rome, Italy. Catacombs of San Sebastiano) By Palickap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카타콤 Catacomb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03XX77700027 (임석재)
‘카타콤베’는 원래 현재의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의 지하에 있는 묘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2세기에 접어들면서, 로마에서는 동방의 종교와 유대인들의 관습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시체를 화장하는 풍습에서 매장하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로마 주변에는 공화정 시대부터 이미 별의별 종류의 묘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동묘지를 만들 만한 장소가 더 이상 없었다. 그리하여 지하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시체를 매장하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로마를 비롯해 이탈리아와 북부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 카타콤베가 만들어졌다. 카타콤베는 시체를 매장할 작은 구덩이들이 갱도를 따라 층층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갱도들이 여러 층으로 이루어지면서 점차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후세 기독교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무덤에 가능하면 가까이 묻히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카타콤베는 더욱더 크게 확장되었다. 5세기 말부터 카타콤베는 공동묘지로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곳에 묻힌 순교자들을 위한 예배는 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순교자들의 유골은 로마 성내의 여러 성당이나 다른 도시로 옮겨졌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카타콤베에 숨어서 집회를 가졌다고 전해지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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