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 수록된, 박완서의 딸 호원숙이 쓴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 박완서 연대기’로부터 옮긴다.
The Picture Book
Eastman Johnson
Date: 1855
https://www.wikiart.org/en/eastman-johnson/the-picture-book-1855
In the Library (also known as Three School Girls)
Maurice Prendergast
Date: c.1902 - c.1906
https://www.wikiart.org/en/maurice-prendergast/in-the-library-also-known-as-three-school-girls
충신동 집에는 그 당시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책꽂이가 하나 있었는데, 나왕을 조립해서 만든, 높이가 낮은 것으로 아주 단단해 보였다. 거기에는 1959년에 나온 양문문고 105권이 순서대로 꽃혀 있었다. 겨우 한글을 깨칠 나이였지만 나는 그 책 이름들을 입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어머니가 가까이 하던 책이었고 반들반들하게 비닐로 코팅된 문고판 책은 내 눈에도 세련되어 보였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코난 도일의 『여섯 개의 나폴레옹』,헤세의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 트루먼 캐포티의 『초금』, 헉슬리의 『천재와 여신』, 하이데거의 『신은 죽었다』, 푸슈킨의 『대위의 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고골리의 『검찰관』,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등속.
내가 성장해서야 그 책들의 깊이를 알아 그 책들에 매력을 느꼈지만, 어머니는 늘 그 책들과 가까이 있었고 그 세계를 영원히 동경하는 듯이 보였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이 읽었던 세계 문학 작품을 자식들에게 읽혔다. 모두 전공도 다르고 취미도 달랐지만 방학이 되면 정음사와 을유문화사의 세계 문학 전집을 들고 저마다 방으로 들어갔다.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체호프, 고골리, 카프카, 카뮈, 존 스타인벡, 모파상, 하인리히 뵐, 솔제니친 들의 작품들은 우리 집 필독서였고, 어머니는 전에 읽었던 감동을 되살리면서 다시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두꺼운 책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호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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