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 수록된, 박완서의 딸 호원숙이 쓴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 박완서 연대기’로부터 옮긴다. 

The Picture Book, 1855 - Eastman Johnson - WikiArt.org


https://youtu.be/r4IgN_hTKBg 박완서 사후 딸 호원숙이 어머니를 추억하는 내용의 짧은 영상.





충신동 집에는 그 당시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책꽂이가 하나 있었는데, 나왕을 조립해서 만든, 높이가 낮은 것으로 아주 단단해 보였다. 거기에는 1959년에 나온 양문문고 105권이 순서대로 꽃혀 있었다. 겨우 한글을 깨칠 나이였지만 나는 그 책 이름들을 입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어머니가 가까이 하던 책이었고 반들반들하게 비닐로 코팅된 문고판 책은 내 눈에도 세련되어 보였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코난 도일의 『여섯 개의 나폴레옹』,헤세의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 트루먼 캐포티의 『초금』, 헉슬리의 『천재와 여신』, 하이데거의 『신은 죽었다』, 푸슈킨의 『대위의 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고골리의 『검찰관』, 사르트르의 『더러운 손』 등속.

내가 성장해서야 그 책들의 깊이를 알아 그 책들에 매력을 느꼈지만, 어머니는 늘 그 책들과 가까이 있었고 그 세계를 영원히 동경하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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