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남자네 집'을 읽다가, 전에 읽은, 강연을 활자화한 책 '박완서 - 문학의 뿌리를 말하다'를 펼쳤다. 이 책으로부터 박완서의 어머니(홍기숙)에 관한 대목을 일부 옮긴다. 


박완서와 어머니(성북마을아카이브) https://archive.sb.go.kr/isbcc/home/u/item/view/4305.do





외할머니는 엄마를 시집보내기 전에 한두 달을 말미를 줘서 서울 외갓집에 가보게 했다고 해요. 그곳에서 엄마는 신식 교육을 받은 자기 사촌들에 대해서 굉장한 동경심을 갖게 됐던 것 같아요. "아 나도 저렇게 신식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촌구석으로 시집이나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엄마의 머릿속에 박혀 한이 되었을 겁니다.

엄마가 딸한테도 시집가서 잘 사는 것 말고 따로 꿈을 가졌었다는 게 나중에도 생각할수록 신기한데, 그건 아마도 엄마가 옛날이지만 책을 참 많이 읽으신 분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는 시집올 때 필사한 책을 한 궤짝을 가져왔대요.

할아버지는 그것이 혼수는 아니었지만 아주 대견해하셨다고 해요. (중략) 우리 할아버지는 며느리가 다른 혼수는 어떻게 해 왔는지 상관 안 했지만, 그 책들은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해요. 동네 사람들이나 친구분들한테 "새애기는 자기가 베낀 책을 한 궤짝을 가져왔는데 그 필체가 구슬 같더라."고 자랑하셨다나 봐요. 엄마가 글씨를 유려하게 썼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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