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es, 1915 - Nicolae Vermont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장미 병들다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현대문학, 2013. 11., 이행선, 정선태)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74787&cid=41773&categoryId=50391


이효석의 단편 '장미 병들다'(1938)의 남죽이 유진 오닐의 희곡 '고래'(1917) 속 대사를 읊는 장면을 옮긴다. 마침 소설 속 달력이 지금과 같은 유월. 







"참기 싫어요, 견딜 수 없어요……죄수같이 이 벽 속에만 갇혀 있기가. 어서 데려다주세요, 데이비드. 이곳을 나갈 수 없으면, 이 무서운 배에서 나갈 수 없으면 금방 미칠 것두 같아요. 집에 데려다주세요, 데이비드. 벌써 아무것두 생각할 수 없어요. 추위와 침묵이 머리를 가위같이 누르는걸요. 무서워. 얼른 집에 데려다주세요."

남죽은 남죽으로서 딴소리를―---듣고 보니 오닐의「고래」의 구절구절을 아직도 취흥에 겨운 목소리로 대로상에서 마치 무대에서와 같은 감정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북극 해상에서 애니가 남편인 선장에게 애원하고 호소하는 그 소리는 그대로가 바로 남죽 자신의 절실한 하소연이기도 하였다.

"이런 생활은 나를 죽여요…… 이 추위, 무섬. 공기가 나를 협박해요―--- 이 적막. 가는 날 오는 날 허구한 날 똑같은 회색 하늘. 참을 수 없어요. 미치겠어요. 미치는 것이 손에 잡힐 듯이 알려요. 나를 사랑하거든 제발 집에 데려다주세요. 원이에요. 데려다주세요."

"얼음 속에 갇혀 있으면 추억조차 흐려지나 봐요. 벌써 머언 옛일 같어요…… 지금은 유월, 라일락이 뜰 앞에 한창이고 담 위 장미는 벌써 봉오리가 앉었을걸요."

이것은 남죽이 늘 즐겨서 외는「고래」속의 한 구절이었으나 남죽의 대사는 이것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물 위에 둥둥 떠서 멀리 사라지는 찢어진 편지 조각을 바라보며 남죽의 고향을 그리는 정은 줄기줄기 면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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