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은 헤밍웨이의 작품으로부터 제목을 따왔다. 헤밍웨이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예전에 읽었는데 지금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몇몇 장면과 일화들이 흐릿한 목탄화처럼 떠오른다. 존 포드 감독의 영화 중에 '여자 없는 남자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쟁 영화인 모양인데 1930년 작이다. 헤밍웨이의 책이 1927년 출판이니 저 영화 제목도 헤밍웨이에게 빚진 것일까.


현재 읽는 책 가운데 '단순한 철학 산책'이라고 있는데, 책 표지에 적힌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매혹적인 철학소설'이라는 소개문에 낚였다. 이 책 역시 '여자 없는 남자'의 인생 서사로서, 아내가 자신 말고 다른 남자를 선택해서 집을 떠난다. 삶이 공허해진 주인공 남성은 철학 개론서를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새로운 인생 방향을 찾으려 시도하는 게 이 책의 골자이다.


책 뒤로 가면 이 남성의 딸이 결혼을 할 계획인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딸의 약혼자는 인도 출신 남성, 관습적으로 그는 신부가 순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딸은 미국 여성, 자신의 '과거'에 대해 결혼 전에 예비 신랑에게 털어놓자 남성은 결혼을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이 둘은 결혼 전에 이미 동거하고 있는 중으로서 결혼까지 할 사이가 되자 여성이 그 남성을 만나기 전에 여러 남자들과 사귄 사실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참, 어이 없네. 그렇다, 어이가 없다. 독자이자 제3자인 내가 봐도 어이 없는데, 본인이나 본인의 가족이 이런 일을 겪으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이 작품은 21세기에 쓰인 건 아니지만 아주 옛날에 나온 것도 아니다. 아직도 해묵은 전통에 집착하는, 최소한 집착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에 적잖이 존재하겠지. 


주인공 남성은 이 상황을 돌파하려고 딸의 남친을 찾아가 대화를 시도한다. 


- 내 아내는 결혼한 상태에서 딴 사람을 좋아했다네. 

- 그 이야기를 지금 왜 하시는 거죠?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맘대로 하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살기를, 살아가기를, 살아왔기를 바라는, 그 태도를 버리라고 그는 충고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인도인 남성은 진짜로 순결을 바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척이라도 해 주길 원한 것일 수 있다. 본인의 신부가 자신의,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가치관에 맞춰 주기를, 겉으로라도 '조신'한 척 해 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남자가 여자를 제멋대로 대하며 순종하길 원할 때, 여자는 인내하지 않고 떠난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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