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엽의 '청춘을 불사르고'에 1927년 발표한 '꿈길로만 오는 어린이'란 글이 있다. 김일엽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김일엽이 이 글 '꿈길로만 오는 어린이'를 발표할 때 대외적으로 자식의 존재는 비밀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지 않고 떠나 보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자신만 아는 암호 - 비밀을 아는 극소수가 있다면 그들과는 공유하는 - 로 허구적 태도를 섞어 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그럼에도 극복하고 초월하여 정진하고자 하는 결심을 표현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일당스님을 기리며 https://www.segye.com/newsView/20141230003611?OutUrl=daum 김일엽의 아들 화가 김태신(1922~2014)은 출가하여 일당 스님이 되었다.


혹, 나의 외로운 것을 동정하는 이가 있어 "어린것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을 것을……"하고 말을 하면 나는 도리어 "지금 어린것을 해서 무엇해요. 한 몸의 생활 때문에도 걱정이 많은데요"하고 말하는 사람의 호의를 물리쳐버리고 말 뿐이었다.

꿈마다 장소와 정경이 다르고 계집아이인지, 사내아이인지 얼굴이 어찌 생겼던지 기억되지 않지마는 나이는 언제나 3,4세로 걸음 잘 걷고 말귀 잘 알아듣는 무한히 사랑스러운 어린것이었다.

꿈을 깨고 나서 생각하면 이상하기 끝이 없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지금에는 어린이로서 가까운 아무도 없는 나는 벌써벌써 사라져버린 옛날에 인연 있던 어린것들을 거슬러 생각하여보았다.

내가 7,8세 때에 나를 몹시 따르는 어린 동생이 하나 있었다. 역시 서너 살 된 것이었다.그 어린 불쌍한 동생은 네 살 먹던 해에 그만 이질로 죽어버렸다. 그러면 꿈에 뵈는 것이 그 어린것일까?

몇 해 전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말을 듣고, 보지 못한 그 어린것이 어쩐지 그리운 듯이 생각되어 길에서 그만 나이의 아이들을 보면 "그 아이도 조만할까, 고만할까?"하고 생각해본 일이 있지만, 그 애인의 기억조차 사라진 오늘에 그의 사생아가 지금 내 꿈길에 나타날 리도 없겠고.

나이가 남의 어머니 될 때가 지났으니 잠재의식적모성애가 발로된 것일까.

비록 꿈이라 할지라도 그렇게도 안타깝게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그렇게도 나의 전정신을 사로잡는 그 아이는 과연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내 태에 생겨서 내 품에서 길러질 인연이 있는 어린 것이 무슨 장해로 내게 태어나지를 못하여 애처롭게도 꿈길로만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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