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신문 엮음 / 평화방송.평화신문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수환 추기경 구술, 평화신문 엮음,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평화방송.

 

작년(2008년) 평화신문 구독자 모집의 일환으로 우리 신제주성당에 어떤 분이 오셨다. 그때 나는 평화신문 구독신청을 했다. 도움이 되는 신문이다. 근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님 일대기를 다룬 책이 있다며 권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마 조용귀 목사 책이 나왔다고 하면 순복음교회 모든 신도가 다 그 책을 구입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 말 때문이다. 그 말 때문에 의무감에서 샀다. 그리곤 책장에 꽂아 두었다.

 

얼마 전 그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다. 선종 소식을 들은 건 월요일 성경공부가 끝나갈 무렵이다. 교구청에 근무하시는 분이 강우일 주교님이 서둘러 서울로 가셨는데, 추기경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을 한 번 읽어야겠다 싶었다. 읽고 나서 한 마디로 느낌을 적으면,

"이렇게 좋은 책을 책장에 꽂아만 두었다니"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추기경님의 훌륭함을 그리고 이 책의 뛰어남을 몰랐다.

 

김수환 추기경님,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시돌에 피정 갔을 때 직접 뵌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신학교 진학해서 신부가 될까, 아니면 나중에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까 하던 시절이다. 마침 내가 어느 신성여고 학생을 좋아하게 될 무렵이라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런 시절에 그분을 직접 뵈었을 뿐, 나머지는 사진 속에서 뵌 분이다.

 

대학 시절, 그 전까지만해도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줄었다. 주위에서는 이상한 루머도 있었다. 가톨릭의 부패 때문에 추기경님이 발목잡히셔서 그렇다는 둥.

물론 나는 그때 신앙을 버리고 살 때여서, 가톨릭이 더 강한 사회적 발언을 해주시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다른 생각은 없이 살았다.

 

근데 이 책을 읽으니 추기경님의 고뇌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다.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과격하지 않고 보수적인듯 하면서도 항상 민주화 운동의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필요한 발언을 잊지 않으셨던 분. 그 분의 이야길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목에서 물러선 뒤의 일까지. 근데 그 분도 나처럼 결혼해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노라고 한다. 나와 다른 분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깜짝 놀랄 신비적 체험도 없었다고 한다. 성령기도회에 가면 그렇게 많은 기적들과 증언들이 쏟아지는데, 추기경님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한다.

"위대는 평범이외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읽었던 구절이 여기서 떠오른다. 정말 튀는 구석이라곤 전혀 없으신 분이다. 그런데도 한국 가톨릭을, 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 오신 분이다. 너무도 평범했기에, 나와 다름이 없는 분이시기에 편안하게 그분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가 그렇게 평범하게 다가왔던 것은 그분의 겸손 때문일 것이다. 항상 낮은 곳을 지향하고, 항상 자신의 죄인임을, 비겁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사실 그분이 왜 대단한 구석이 없겠는가. 어찌 비범함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그분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으신다.

 

내가 본받을 많은 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면서 뭔가 잘 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모습들.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과 함께 나를 돌아볼 기회를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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