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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날 때
황종렬 지음 / 분도출판사 / 2000년 10월
평점 :
황종렬, <신앙과 민족의식이 만날 때>, 분도출판사, 2000.
지식인의 관심 경향도 하나의 흐름이 있는 것인가. 내 삶의 중심 테마는 역사였다. 현직 역사교사이기도 하고. 그리고 심장 고동치던 그 80년대를 지탱하게 한 힘도 그 역사였다.
그러나 3년전부터 심하게 앓았고 그러면서 내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이젠 생태적 가치관을 앞에 내세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도 했다. 그 과정에 이 책의 저자 황종렬이라는 분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아마 <평화신문>에서였지 싶다. 그 분의 이름과 또 한 분, 잘 기억나진 않는데 이동훈 신부님인가 하시는 분께서 생태 영성에 대한 책을 냈다는 기사였던 것 같다. 책 제목을 가지고 여러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녀도 구할 수가 없었다. 아마 영세한 출판사에서 찍어 중앙 무대에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훗날을 기약했다.
근데 그 인터넷 서점에서 황종렬이라는 분이 쓴 책이 몇 권 있음을 알게 되고서 일단 생태영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책을 쓰신 분의 다른 책도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2권 주문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한 동안 책꽂이에 장식물로 있었다. 그러다가 순서대로 꺼낸다고 꺼낸 것이 이 책이다. 표지에 안중근의사의 손도장, 그리고 마지막 쓰신 글이 실려 있다. 려순 감옥에서 쓰신 글이다. 책의 부제가 -안중근 토마스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관한 신학적 응답-이다.
내가 어쩌면 살짝 멀리 놓아둔 역사를 신앙과 접목시킨 책이겠다 싶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해방신학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신 분 같다. 나 역시 대학시절 해방신학에서 희망을 보고자 했다. 그러다가 아예 신앙을 놔버리기도 했었다.
그래서인가 더 친연성이 느껴지는 분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서문에서 그 분이 밝히기를 "역사와 사회와 신학을 통합시켜 갈 신학 방법론이 나의 주전공 분야이다." 라고 하셨는데, 나는 대학을 역사 전공, 석박사 과정을 사회학, 그리고 40대 중반에 들어 다시 신앙을 고민하는 모습이라 그분의 입장이 괜히 반갑게 다가왔다. 물론 요즘 세태에서 이런 책이 환영받을 것 같지는 않지만 정직하게 한 시대를 증언하는 책이라 생각한다.
과거 일제 강점기 가톨릭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타협적이었다는, 아니 어쩌면 진정한 신앙에서 벗어나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동조했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안중근의 의거를 둘러싼 교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이 책에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실망이 컸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는 이렇게 역사와 함께 나중에 드러나기도 하는가 보다 싶었다. 저자의 말처럼 현재 정의구현사제단의 모습이 그런 계승이 아니겠나 싶었다.
책의 시작은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부터다. 이렇게 글을 끌어가는 솜씨도 탁월하고 또 그런 동화 속에 역사와 신학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고개고개의 지루함이라고 느껴졌던 것도 그 만큼 당시 민중들의 고달픈 삶이 반영되어 있음이라고 한 것도 탁월한 분석이었다.
안중근 관련 인용 기사를 다른 곳에서 잠깐 보긴 했지만 이 책에서 더 많이 확인한 것도 소득이다. 안중근이 빌렘 신부와의 마지막 접견에서 "인생이 있는 이상 죽음 도한 이르든 늦든 면치 못하는 바이다. 믿는 이인 나는 그 하루를 앞서 성단에 오르니 교우의 힘에 의해 한국 독립의 길보를 가져다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라며 신앙인과 역사 속의 시대적 책무를 다한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은 도덕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다. 그가 적의 포로를 사로잡은 후에 처형을 주장하는 동료와 부하들을 만류하며 "만국공법에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라는 법은 없다. ...적들이 그렇게 폭행을 자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을 다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마저 저들과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겠는가? 또 그대들은 일본의 4천만 인구를 모두 죽인 다음에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는가?"라며 어쩌면 비현실적인 포로 석방 조치를 취한다. 그로 인해 독립군이 오히려 곤경에 빠지고 안중근이 독립군 내에서의 위치도 불편해지긴 했지만 그는 확고한 평화의 원칙, 하느님 공법의 원칙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당시 한국 지식층과 교회는 살인자의 죄목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잘못을 뉘우치기 전까지는 성사를 집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인지 뮈텔 주교의 성사 거부를 어기고 빌렘 신부는 안중근에게 찾아간다. 물론 빌렘 신부도 안중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갔다고 한다. 그러나 안중근의 자신의 뜻을 바꾸지는 않았고 그럼에도 빌렘신부로부터 고해성사를 받는다.
이해하기 힘든 것은 뮈텔 주교 등의 입장이다. 저자는 이것을 신앙보다는 서구 중심의 근대화론에 뿌리를 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패러다임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인 당시 서구 지식인의 보편성에서 찾고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시대를 뛰어 넘어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됨의 모습이기에 아쉬움은 남는다.
그게 없었기에 가톨릭에서 신사참배를 허용한 것이다. 1933년 1월 교황대사 에드워드 무니 대주교를 통해 신사참배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원고이기는 하나, 상당히 무거운 원고이다. 생태영성을 공부하려다가 다시 나의 옛 테마인 역사로 돌아갔다 왔다. 하지만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신앙과 함께 한 역사 공부라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전부터 이런 책읽기를 했더라면 내가 영적으로 헤매는 기간이 짧았을 것을...
지금이라도 새롭게 만나게 되는 신앙과 역사, 종종 이런 책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