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손철주,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생각의 나무, 2006.

 

아마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으로 할인하니까 샀던 것 같다. 근데 사고 놓고 보니 예전에 이 책을 사서 책장에 모셔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한심한.... 나의 책 사치 때문에 바보짓 한 것이다. 그저 싼 책 있으면 질러대는.

허영심이다. 이 책 저 책 읽으려 하고. 전공도 아니고, 마음을 맑게 하는 책도 아닌 것 같은데, 그저 교양 쌓는다는 명분으로 미술 영역까지 도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참담하다. 글쓴 사람 손철주의 글이야 워낙 미문이고 멋스럽지만 내가 도저히 따라가질 못한다. 그러니 참담할 수밖에. 나의 허영심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다.

 

손철주. 학고재 서적 주인이다. 이름은 들어봤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한겨레>에 칼럼을 쓴다. 글을 보니, 정말 글쟁이다. 맛이 듬뿍 들어간 글을 쓴다. 절박하게 사회운동하는 사람들 보면, 놀고 있다고 하겠지만, 삶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손철주의 글에 금새 반할 것이다.

내 경우는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약간의 거리감은 있다. 그러나 내가 갖지 못한 그 멋스럼 때문에 괜히 주눅들기도 하고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하는 처지라 즐겨 본다. 편치 않은 마음에서.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 바라볼 때의 그 심정 말이다.

 

그러다가 칼럼 말고 한 권의 저서로 본 게 이 책이다. 서문이 마음에 들었다. '미술을 데리고 놀아볼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란다. 그러니 전공자가 아니라도 좋겠다는 말이라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입다문 그림을 입 떼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한다. 표현 좋다. 이걸 그대로 내 전공에 갖다 붙이면 '과거는 말이 없다. 다만 역사가가 그 과거로 하여금 입을 떼게 한다'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서문 말미에 '대설이 갈짓자로 내리는 날'이라는 표현도 멋있다. 이런 한심하게도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이렇게 좋아한다.

 

근데, 문제는 본문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이 양반 글이 고전에서 현대미술까지, 동양에서 서양까지 종횡무진이다. 그러면서 본격적 미술 비평도 아님에도 나를 현란하게 만든다. 어렵다. 그저 그런 내용이 있겠구나 하고 대충 이해하면서도 사실 뭔 말인지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남의 영역에 들어오니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뭐 평소에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애당초 무리였다.

그래도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는 써 먹기 좋은 지식이기도 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성삼문, 박팽년, 정인지 등 20여 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데, 본시 그 의도가 안견과 안평대군과의 도타운 관계에 힘입어 한 몫 끼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반전되어 세조가 권력을 잡음으로 해서 이 그림에 이름이 올랐던 이들은 모두 작살났다고 한다. 그 명단이 오히려 살생부가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재미 있었으나 그 나머지는 잘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옛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던져주지 마라" 난 돼지다. 최소한 이 영역에서는. 그리고 이 책은 진주다. 그러니 난 애당초 이 책을 잡지 말았어야 한다. 괜히 이 좋은 책을 욕보게만 했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던 표현 몇 개만 옮기고 글을 마치련다.

 

"손끝의 재주가 아니라 정신의 깊이에서 탄생된다. 장인의 현란한 기교가 행세하는 세상, 정신의 고매함이 밴 수묵화가 그늘진 외지에서 배회하고 있다는 상상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내가 이런 표현에 공감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정말이지 현란한 기교도 못되는 돈 주고 산 어설픈 '쯩' 하나 가지고 행세하는 세상이라 더더욱 본질적 가치가 그립기만 하다.

 

"전업화가들이 일요화가를 미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아마추어의 여유를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하루 그리고 늘 물감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꼴, 그것이 못마땅할 따름이다." 돌아본다. 나를. 나 역시 하루 그리고 늘 물감 냄새 풍기고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성찰의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을 반 값에 산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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