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8년 11.12월 - 통권 103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녹색평론>을 아주 오래 전에 보다가 잠깐 구독을 중단했다.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그 원론적이고 타당하고 당당한 목소리를 나로서는 어찌 몸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끊었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강팍해져가고 근본적인 삶의 위기가 다가오면서 다시 잡았다. 그러면서 외친 소리가 <녹색평론>이 옳다. 비록 내가 지금 당장 그 가치관대로 따라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외면하지 말자. 항상 고민하자. 그런 생각이었다.

근데 한동안 그렇게 힘차게 읽던 이 책이 오늘엔 왜 그런지 넋두리로 읽었다. 나도 힘들고 필자들도 힘들고 <녹색평론>도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물론 김종철 선생님도 이 책을 통해 무슨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그래도 책을 내지 않을 수 없기에 낸다고 하셨다. 공감한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기에.

요즘엔 금융위기가 심각해져서인지 그 내용이 시끄럽다. 근데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은 사실 금융이 아니다. 순 도둑질이다. 박승옥의 글에 "금융업이란 거칠게 말하면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악질의 고리대금업이다. 금융지본주의란 자본주의의 가장 악취나는 진화이며, 이윤이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드는 자본의 속성상 필연의 자연선택이기도 하다. 금융자본주의란 기생충 자본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핏빛 황혼기기여 자본주의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인민의 경제, 자립과 자치를 근본으로 삼는 호혜와 평등의 지속가능한 순환경제에서는, 금융이란 이슬람에서 시행되고 있는 무이자 은행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융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금융은 또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그만큼 이 책은 근본적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그러니 최성각은 또 " 나는 인도 국가와 엘리트들에 의해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인도의 강과 계곡의 기억 속에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아룬다티 로이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에 의해 사랑받는 작가가 아니라 자연에게 기억되는 작가, 나를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글을 썼는가.

교육문제도 마찬가지다. 홈스쿨링하시는 분의 글이 있는데, 그의 글에 본회퍼가 말했다는 "2차세계대전은 학교교육이 낳을 수밖에 없었던 결과"라는 내용이 있다. 어차피 국가 교육은 제도권 안에서 제도에, 기성의 틀에 맞춤식으로 이뤄져 인간 근본의 자유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맞긴 맞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낼 용기가 없다. 이 세상이 분명 브레이크 없이 절벽을 향해 내닫는 기차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박성대의 글에 " 이 세상을 마저 살아내지 못한 제가 지금껏 만난 가장 큰 불행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모조리 등짝에 바코드를 붙여버리는 기 고약한 물신의 시대와 맞닥뜨렸다는 것입니다"라는 표현. 나도 바코드 인생이다. 불쌍타. 그래도 함께 넋두리를 하다보면 " 비정한 시절도 결국을 뛰어넘을 수 있겠지요"라는 대목에 공감한다.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금이정의 서평 중에 "선진국 대신 고향을 달라'라는 말. 그리고 그가 인용한 시몬느 베이유의 "악과 겨루는 선은 이미 선이 아니다"라는 말. 악을 악으로 되갚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는 성경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해도 이길 것은 악이 아니다. 선으로 가야한다.

강수돌의 서평에서 그래서 희망을 보는 건, 그의 말 중에 나오는 아나키즘이다.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협력, 상호의존 말이다. "돈벌이가 안되지만 연구도 하고 광장에 나가 진보를 외친다. 오히려 단돈 1천원씩이라도 내놓고 서로 돕는다. '비영리적' 행동도 한다. 강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다윈주의(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사회)' 가정이 틀렸음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협력이 경쟁보다 우수하고 효율적임을 실천으로 드러낸다."

그래 맞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바로 저거다. 다들 돈에 미쳐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많다. 비영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도 <녹색평론>을 넋두리로만 간직하는 게 아니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