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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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IMF 이후로 자기 계발서가 흥행에 성공하더니, 이제는 그것마저 약발이 다한 것 같다. 자기 계발해봐도 결국 대한민국의 이런 구조 아래에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요즘엔 아예 계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친 마음,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책들이 유행이다. 힐링이라든가 뭐라든가.

암튼 예전 잘나가던 기준으로 보면 포기다.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실패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다. 패배자들의 나약한 자기 합리화라고.

그러나 나 역시 패배했다. 작년 이래로. 인간의 능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을 느끼며 패배를 시인했다. 그런데, 그 패배가 패배가 아니었음을, 그것이야 말로 인생을 다시 보게 되는 행복한 성찰의 계기임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랬구나. 인생은 직선이 아니었구나. 느릿하고 구부러진 그 길이야말로 오히려 여유롭고, 삶의 의미를 다시 느끼는 시간이었다. 무엇 때문에 직선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도 못하고 살았던 시간이 처절이 반성되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았더니 정말이지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보듬어야 할 인간들이 너무도 많았다. 예전엔 그들을 쉽게 외면했다. 패배자라고. 그러나 이제 내 관점은 완전히 바뀌었다. 함께 보듬고 가야할 사람들임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이 책을 잡은 것은 아니다. 내가 맡은 일이 명상의 시간을 지도하는 일이라서 그랬다. 좋은 글, 사람을 달래주는 글, 용기를 주는 글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이름만 들어봤지, 그의 시집을 읽어보지도 않았던 경우다. 그래도 좋았다. 그냥 좋았다. 사실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뻔한 것이다. 유치한 것이고. 그러나 그 유치함이 때로는 사람을 울린다. 그래, 인간은 그 정도 밖에 안 된다. 아니, 그 정도이기에 인간이다.

여러 좋은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그래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인생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라는 말이겠다. 그리고 오히려 직선보다 곡선이 내게는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패 없는 인생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으면 설혹 존재한다 하여도 오히려 매마른 인생일 뿐이다. 실패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보다도 십자가의 사랑에 주목할 수 있다. 남들이 나를 뭐라 흉봐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신께서 주신 재는은 더욱더 노력해서 살리지만,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 탐내거나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더욱 크게 세워 멀리 갈 걸음 준비해주시느라 나를 쓰러뜨린 신을 이해할 수 있다. 내 그릇의 작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할 수 있다. 헬렌켈러의 말처럼 눈 앞의 문이 닫혀 있을 때 뒤의 문이 열려 있음을 안다. 남에게 질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게 행복이다. 곡선이야말로 아름답다. 오히려 직선일 때 천박하다. 오늘,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낀다.

아 참, 글 마치기 전에 안치환의 노래였나,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하는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정호승의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정호승의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좋아하시던 허찬란 신부님의 어머님을 떠올렸다. 그 연세에 이런 시집을 다 읽으셨다니.....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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