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8년 7.8월 - 통권 101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직접민주주의’라?

<녹색평론 101호> 2008년 7-8월호.



요즘 신앙서적 이외의 책은 잘 못 봤다. 그래도 이 <녹색평론>만큼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 몸이 좀 괜찮다 싶고 방학이라 몸도 쉬고 하기에 얼른 집어 들고 봤다. 오랜만에 보니 눈물이 난다. 이전 호가 100호라고 하는데, 그 중요한 100호도 아직 못 읽었다. 틈을 만들 생각이다.
이번 호의 주제는 한 마디로 이제 대의제 민주주의 접고 직접민주주의 하자인 것 같다. 촛불에서 명확히 민심이 드러났어도 한나라당과 조중동과 쥐박이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왜? 지지율이 놓아서? 아직도 그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천만에. 제도 탓이다. 그 잘난 대의민주주의 때문이다.
쥐박이가 당선되던 “지난 대선은 유권자 10명 가운데 4명은 투표를 하지 않은 역대 최저 투표율의 대통령 선거였다. 결국 전체 유권자 10명 중 3명의 지지로 새 대통령이 권력을 차지하였다. 올해 4월 실시된 총선은 역대 최저인 4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기피한 셈이다. 결국 전체 유권자 대비 18%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심지어는 지역 유권자 10명 가운데 1사람 이하의 지지로 당선된 경우도 있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대표성에 심각한 의문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승옥의 글 중에 나온 대목이다. 황당한 일 아닌가. 지금 한나라당 애들 저리 설치는데 따져보니 고작 18%지지를 먹고서 저리 설칠 수 있다는 게. 열불 난다.
그러니 직접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책을 내면서’에서부터 이어지는 좌담, 송기원의 <녹두장군> 서평을 쓴 이명원의 글에서도 그런 주장이 기본에 깔렸다. 당연하다. 촛불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현실감에 있어서는 우려가 된다. 직접 민주주의 좋은 거 모르는 사람 없다. 실현이 어려울 뿐이다. 규모가 이미 동네 정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네 정치라도 직접민주주의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공동체 회복이 우선이다. 물론 이것도 어렵다. 소농 중심의 로칼 푸드 시스템, 뭐 이런 것들이 좍 깔려 같이 가야 한다. 암튼 그래도 꿈은 꾸어야지.
그 테마 말고도 있다. 특히 북한의 기아사태를 보며 새로운 시각으로 쓴 존 페퍼의 글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이 말에 따르면 북한의 기아사태는 단지 특이한 독재체제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북한은 그래도 잘 살았다. 소련 붕괴로 값싼 에너지 공급이 끊어지면서부터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에너지가 끊어지자 농업 수확량이 줄었고, 그 타개책으로 산을 다 밀어 농경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듯이 비만 조금 와도 난리가 나는 북한의 모습이다. 즉 자연재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에너지 위기와 관련된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세계의 위기는 에너지 위기, 농업 위기,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다. 근데 북한의 경우를 통해서 보면 이것은 모두 연결된 것이다. 그러니 이건 북한 단독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경고음을 먼저 울린 ‘세계의 카나리아’인 셈이다.
그런데도 세계는 여전 신자유주의의 맹폭격이 이어진다. 그 이름에 ‘자유’가 있어 본질이 은폐되고 미화된다. 근데 사실 이건 군사적 침략보다 더 무서운 ‘소리 없는 폭격’이라고 한다. 그 만큼 교묘해진 현실이다. 강수돌이 쓴 서평에 이런 내용이 많다. ‘세계화’ 관련 책 3권을 소개하며 비교 평했다. 그 책 중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는 세계화라는 용어조차 제국주의를 은폐하는 효과를 내는 헛소리라 보면 세계화는 결국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적 자본가들의 ‘계급 프로젝트’라고 본다고 소개한다. “아시아가 거대한 파산을 겪고 브라질 경제가 몰락하는 동안 미국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가 제국이라는 개념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지식인들은 세계화를 무슨 신성한 가치나 되는 양 떠벌린다. 속상하다. 그래서인가 지식인에 대한 서평도 있다. 김원이 쓴 것이다. 여기 소개되는 이명원의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그리고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따로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역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노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병을 얻기 전까지.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근데 그 과정에서 지식인의 몰락을 직접 목격했었다. 프로젝트에 끌려 다니는 교수들. 프로젝트에 끌려 다닌다고 하면 고상한 말이고 노골적으로 말해서, 돈과 권력에 몸을 파는 교수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지식인의 몰락인지, 아니면 애당초 지역사회에 지식인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참담함을 느꼈다. 그래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건강 문제로 일찍 자리를 떴다. 다시 복귀하고 싶은 생각은 많지 않다. 뻔한 복마전이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서평에는 “이론과 현실 분석을 통한 개입보다 과거보다 한층 경쟁이 강화된 대학사회내 구성원으로 진입하기 위한 ‘무한 경쟁’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교적 얌전하게 써 놨다.
하지만 정작 서평자 말고 원 책의 저자인 이명원은 그의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너 자신의 행복을 유예하고 결코 버릴 수 없는 좋은 삶에 대한 희망을 빠른 속도로 궤멸시키고 있는, 저 근대적인 삶 전체를 회의하라. 이 세상에는 경제주의와 시장권력으로도 장악할 수 없는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근대적인 고뇌와 전망이 발 밑에 있다. 발견하라. 귀를 기울여라.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나는 이명원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기개와 그의 관점과 그의 처사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말고, ‘경제주의와 시장권력으로도 장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영원히 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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