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07년 1~2월 - 통권 92호
녹색평론 편집부 엮음 / 녹색평론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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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이냐 생명이냐
<녹색평론> 2007년 1-2월호(통권 92호)


신년호인데, 힘이 없다. 그럴 수밖에. 지난 해 우리는 모든 싸움에서 졌다. 자본과 탐욕의 질주는 무섭다. 그 어느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새만금이 그랬고 천성산이 또 그랬다. 낙동강 하구 살리기 역시 그렇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 역시 그렇다. 모든 싸움에서 졌다. 그래서 2006년 작년 한 해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사에 절망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고까지 한다.
절망. 그람시가 그랬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해대는 걸 보면. 그러나 어찌 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의지로 낙관이라고 할 수밖에.
이번 호에는 김해창이 쓴 취재기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6년 12춸 15일 부산의 ‘공간 초록’에서 열린 ‘생명의 대안은 없다: 제3차 전국 토론회’의 취재기다. 전국에서 모여든 패자 70여 명이 모여 ‘부활의 희망’을 갖기 위해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여기서 김종철은 지난해 여러 패배를 통해 사람들이 더욱 성숙해졌다고 했다. ‘그런 일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남을 것이고, 그것이 또 다음 일을 위한 희망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람시하고 비슷하다. 절망인데 희망이라고 한다.
박중록은 여러 소송 과정을 보면서 그 ‘전문가’는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 전문가’에 불과함을 알았다고 한다. 실제 그렇다. 법관이나 무책임한 언론이나 생각 없는 공무원이나 한 가지다.
지율은 또 말한다. “청성산과 을숙도에 대한 법원 판결의 결과는 이 시대를 역설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권 관련 소송에서 법정에 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이 ‘사회’이며 판결의 결과는 자연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위기’ 곧 자연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 준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의 대안은 없다. 그 자체가 질문이고 답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명에 앞서 이윤을 찾아 나선다. 특히 한미 FTA협상에서 의약품 협상에서 보이는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그들은 건강보다 약을 팔아 버는 이윤이 중요하다. 빨린 낫는 약보단 오래 지속해서 먹는 약을 개발한다.
하긴 현재의 교육제도에선 그것이 정당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선희의 글에서 지적했듯이 “지배층의 입장에서 보자면 학교제도를 통해 배출되는 사람들은 실제 그들이 통치하고 지배하는 데 적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분류될 수 있다. 기능적으로 유능하고 영리하지만 총체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은 부족한 전문가 집단(혹은 엘리트 집단-이것은 앞에 말한 자기 밥그릇 챙기기 전문가일 뿐이다)과 획일적인 욕망을 가진 무비판적 대중이다.”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 두 부류 중의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물론 전자를 향해 매진하다. 무엇이 진정 삶의 근본인지도 생각지 않으면서.
한승오가 간디의 책을 읽고 쓴 서평도 볼 만 하다. 그의 말처럼 그 글에는 ‘벼락같은 화두’가 하나 있었다. 간디 역시 밑바닥 절망이 곧 희망이라 외치며 그 길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빈틈없이 무장되어 있고 과시적인 힘을 자랑하는 이 세계에서 혼자서 그런 소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답은 간단하고 명백하다. 소박한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시도는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직 한 개인이나 한 집단만이 노력한다 하더라도.”
이게 핵심이다. 그게(소박한 삶이) 옳다면 그렇게 갈 뿐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화려함으로 유혹하고 협박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 소박한 삶이 비록 혼자 혹은 소수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게 가치 있는 일이라면.
박승옥이 박현채를 추모하며 쓴 민족경제론적 관점에로의 환기도 곰곰이 읽을 만 하다. 많이 달라졌다. 그의 말대로 민족경제론을 주장하면 촌놈 취급 받기 십상이다. 촌놈 정도가 아니라 아주 덜떨어진 놈 취급을 당한다. 과거 민주화운동가들마저도 그런 눈길을 보낸다. 그러니 그것은 배반의 현실에 대한 고통스런 확인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의 표정은 박승옥의 말대로 ‘당당하다 못해 윤기가 너무 흘러 넘’친다. 그들은 이미 ‘흙의 사람들’이 아닌 ‘시장 맹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경제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해도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와 자연환경에 대한 약탈에 근거한 비윤리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경제를 극복하고, 땅과 농의 가치에 기반 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자립경제 순환경제를 회복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맹목적 이윤일 뿐이다.
앞의 김종철의 말처럼 지금의 절망은 우리에겐 성숙의 시간이어야 한다. 겸손과 검소와 나눔과 공동체적 안녕을 생각하면서. 그러기에 더욱 수신할 일이다. 전희식의 표현처럼 ‘술로 돋우는 탁한 취흥’이 아니라 ‘황차나 보이차를 마실 때의 맑디맑은 기운’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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