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마더 데레사 지음, 지은정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마더 데레사가 가르쳐준 사랑



마더 데레사 지음, 지은정 옮김, <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마음이 급했다. 읽기도 전에 10권 주문했다. 우리 봉사반 학생들 나눠주려고. 일단 마더 데레사의 삶이 묻어 있는 책이라면 봉사반 애들 선물용으론 적합하다 싶은 이유 때문이다. 사서 다 나눠줬다. 아니 한 권 남겼다. 나도 읽어 봐야지.
주문해서 보니 책 사이즈가 한참 작다. 포켓북도 이렇게 작은 것은 처음이다. 손에 넣고 다니긴 편할지 모르지만 읽기엔 좀 불편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메시지다. 당연 사랑이다. 책 제목처럼. 식상하다고? 물론 식상하다. 그래도 진리는 역시 단순한 것이다. 사랑 이상의 가르침이 어디 있겠나. 근데 잘 보면 그 ‘사랑’ 솔직히 나도 잘 몰랐다.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특히 마더 데라사가 말하는 사랑은 엄청 큰 것인 줄 알았다. 근데 생각 외로 아주 작은 것이었다. 하긴 그 작은 사랑이야 말로 큰 사랑의 바탕일 것이다.
먼저 “사랑은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삶과 호흡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 나가는 장애인 시설 봉사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 지당하다. 그러면서도 난 찔린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오 25, 40)”라는 것을 거창하게만 생각해서 그랬다.
근데 마더 데레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원한다면 가족 안에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때때로 서로에게 웃음을 보내는 것이 어렵기도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웃음을 짓기가 가끔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 순수해지려면 우리가 이웃에게 주는 그런 사랑 이상의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즉 가족 안에 있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바로 거기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서 펼쳐집니다.
멀리 있는 이를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 끼 제공하기는 쉽지만 우리 집안의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롭고 힘들어할 때 그를 위로하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랑도 폼 잡지 말라고 하는 말씀. 마누라 사랑 못하면서 어디 가서 거창하게 세계 평화 말하지 말라는 말. 지당. 철저히 실천해야 할 일. 그리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일 때문에 사랑 놓고 다니는 사람. 그게 맞을 것이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살았다.
뒤쪽 어린이를 테마로 다룬 장에서도 이 가르침은 이어진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가정에 사랑이 있을 때만 우리는 그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먼저다. 이거 못하면서 밖에서 거창한 일하는 사람, 이젠 안 믿을 생각이다. 위선일 수 있다. 몸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온 사랑에 그칠 수가 있다. 사랑이 생활이고 삶이고 호흡이고 보면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 옳아 보인다.
“어머니는 가정의 심장입니다.” 울림이 강하게 온다. 그렇다고 해서 나 같은 아버지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나는 오늘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느낌입니다. 가정과 가족 안에 사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사랑의 결핍이 바로 이 세상에 그토록 심각한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이다. 가정에 사랑이 넘치면 사회 문제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 같다.
근데 많은 경우 가족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가족을 망치고 있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바빠 살 때, 정신없이 살 때 말이다. 마더 데레사는 그 점도 지적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더 발전하고 싶고, 더 부유해지고 싶은 초조함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서두릅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없고, 부모 또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행히 나는 요즘 가정에 돌아왔다. 일보다 가정을 중시하고 있다. 게다가 “당신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의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에게 기도하기를 가르치십시오. 왜냐하면 기도하는 어린이는 항상 행복한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일치된 가정입니다.”라는 말도 실천하고 있다. 다행인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 읽다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
“나는 당신이 주변에서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예수님 닮아간다면 좋겠다. 노력해야지. 성찰하고, 기도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봉사, 용서, 죽음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당연히 사랑은 봉사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봉사를 하다가 주의할 점. 실망하지 말 것. “당신이 최선을 다했으면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상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성공과 영광에 대해서도 모두 하느님께 돌려드리십시오. 만약 당신이 실망한다면 자신의 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만심의 표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재지 않습니다. 그냥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은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의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유혹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파수꾼의 하나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말한 대목도 좋은 구절이 많다. “죄를 짓거나 실수했을 때,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오히려 디딤돌”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나 요즘 회개하고 이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중이다. 앞으로도 한창 회개해야하겠지만.

죽음에 대한 구절. 많이 하는 말이지만 죽음은 하느님께도 가는 것이라는 것. 그래도 나는 아직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족함이 많다. 근데 “죽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의 양으로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쏟았던 사랑의 무게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나 잘났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잘 산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얼마나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 앞으론 그렇게 살아야지.

오랜만에 책 읽고 글 써 본다. 남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생각 정리다. 좋다. 간간히 이렇게 글 써야겠다. 왜? 사랑 실천을 위해서 나를 닦을 필요가 있으니까.



마더 데레사 지음, 지은정 옮김, <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마음이 급했다. 읽기도 전에 10권 주문했다. 우리 봉사반 학생들 나눠주려고. 일단 마더 데레사의 삶이 묻어 있는 책이라면 봉사반 애들 선물용으론 적합하다 싶은 이유 때문이다. 사서 다 나눠줬다. 아니 한 권 남겼다. 나도 읽어 봐야지.
주문해서 보니 책 사이즈가 한참 작다. 포켓북도 이렇게 작은 것은 처음이다. 손에 넣고 다니긴 편할지 모르지만 읽기엔 좀 불편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메시지다. 당연 사랑이다. 책 제목처럼. 식상하다고? 물론 식상하다. 그래도 진리는 역시 단순한 것이다. 사랑 이상의 가르침이 어디 있겠나. 근데 잘 보면 그 ‘사랑’ 솔직히 나도 잘 몰랐다.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특히 마더 데라사가 말하는 사랑은 엄청 큰 것인 줄 알았다. 근데 생각 외로 아주 작은 것이었다. 하긴 그 작은 사랑이야 말로 큰 사랑의 바탕일 것이다.
먼저 “사랑은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삶과 호흡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다 한 번 나가는 장애인 시설 봉사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 지당하다. 그러면서도 난 찔린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오 25, 40)”라는 것을 거창하게만 생각해서 그랬다.
근데 마더 데레사는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원한다면 가족 안에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때때로 서로에게 웃음을 보내는 것이 어렵기도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웃음을 짓기가 가끔은 힘들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 순수해지려면 우리가 이웃에게 주는 그런 사랑 이상의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즉 가족 안에 있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바로 거기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서 펼쳐집니다.
멀리 있는 이를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밥 한 끼 제공하기는 쉽지만 우리 집안의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외롭고 힘들어할 때 그를 위로하는 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랑도 폼 잡지 말라고 하는 말씀. 마누라 사랑 못하면서 어디 가서 거창하게 세계 평화 말하지 말라는 말. 지당. 철저히 실천해야 할 일. 그리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일 때문에 사랑 놓고 다니는 사람. 그게 맞을 것이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살았다.
뒤쪽 어린이를 테마로 다룬 장에서도 이 가르침은 이어진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가정에 사랑이 있을 때만 우리는 그것을 이웃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이 먼저다. 이거 못하면서 밖에서 거창한 일하는 사람, 이젠 안 믿을 생각이다. 위선일 수 있다. 몸에서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온 사랑에 그칠 수가 있다. 사랑이 생활이고 삶이고 호흡이고 보면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 옳아 보인다.
“어머니는 가정의 심장입니다.” 울림이 강하게 온다. 그렇다고 해서 나 같은 아버지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나는 오늘날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느낌입니다. 가정과 가족 안에 사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사랑의 결핍이 바로 이 세상에 그토록 심각한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확한 진단이다. 가정에 사랑이 넘치면 사회 문제도 그리 심하지 않을 것 같다.
근데 많은 경우 가족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가족을 망치고 있다. 나도 예전에 그랬다. 바빠 살 때, 정신없이 살 때 말이다. 마더 데레사는 그 점도 지적한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더 발전하고 싶고, 더 부유해지고 싶은 초조함 때문에 무서울 정도로 서두릅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없고, 부모 또한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행히 나는 요즘 가정에 돌아왔다. 일보다 가정을 중시하고 있다. 게다가 “당신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의 어린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들에게 기도하기를 가르치십시오. 왜냐하면 기도하는 어린이는 항상 행복한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가정은 일치된 가정입니다.”라는 말도 실천하고 있다. 다행인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 읽다가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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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주변에서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예수님 닮아간다면 좋겠다. 노력해야지. 성찰하고, 기도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봉사, 용서, 죽음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당연히 사랑은 봉사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봉사를 하다가 주의할 점. 실망하지 말 것. “당신이 최선을 다했으면 어떤 실패에 대해서도 상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성공과 영광에 대해서도 모두 하느님께 돌려드리십시오. 만약 당신이 실망한다면 자신의 힘을 믿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만심의 표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재지 않습니다. 그냥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주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은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의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기쁨은 힘입니다.” “기쁨은 유혹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파수꾼의 하나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말한 대목도 좋은 구절이 많다. “죄를 짓거나 실수했을 때,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한다면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오히려 디딤돌”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나 요즘 회개하고 이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중이다. 앞으로도 한창 회개해야하겠지만.

죽음에 대한 구절. 많이 하는 말이지만 죽음은 하느님께도 가는 것이라는 것. 그래도 나는 아직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족함이 많다. 근데 “죽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의 양으로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쏟았던 사랑의 무게로 판단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나 잘났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잘 산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얼마나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 앞으론 그렇게 살아야지.

오랜만에 책 읽고 글 써 본다. 남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생각 정리다. 좋다. 간간히 이렇게 글 써야겠다. 왜? 사랑 실천을 위해서 나를 닦을 필요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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