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형수 지음, <문익환 평전> 2004. 실천문학사


하, 벌써 10년이구나. 1994년 1월 18일.
우연이었을까, 포항에서 생활하던 내가 그 때 잠시 서울에 있었다. 충격이었고, 곧바로 한일병원을 찾아갔었다. 그 때의 그 가슴 무너짐,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었구나.
책을 구입해놓고 읽기 전까지만해도 이 책이 왜 지금 나왔을까 의아해 했다. 그런데 벌써 10년이라. 정말 가까운 시간 같은데

책은 가계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된다. 간도로 이주해간 선조들의 이야기, 그곳에서 전개되는 개척과 항일운동, 그리고 윤동주 등의 벗들 이야기. 여기까진 그냥 그랬다. 조금은 미화되고 있다는 괜한 시비와 함께, 그렇게 읽었다.

하지만 내가 살았거나 혹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했던 1970년대 이후의 이야기는 달랐다. 아니 어쩌면 그 때부터가 목사님의 사회운동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낙천주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신앙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신앙이다. 특히 그의 신앙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 전체가 공유하는 신앙이기에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십자가는 치욕이요 패배요 비극이라고 모두 생각할 때 예수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에게서 십자가와 치욕은 영광으로, 패배는 승리로, 비극은 축복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는 일,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환원하는 일, 이것이 바로 예수가 인류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겠어요?"
-극한의 폭력 앞에서 오만해지는 문익환의 이러한 태도.......시련에 부딛칠수록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도취되는 사람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가정의 분위기였다. 부모님 모두 훌륭한 신앙을 가진 시대의 지도자들이었다. 문목사 나이 72에 방북 이후 재판을 받는 자리에서 방청석에 겨우 들어올 수 있었던 90나의 그의 어머니가 외쳤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가는 심정으로 재판을 받아라, 익환아, 그것을 기억해라"라고 말이다.
이런 신앙이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던 것이다. 원효의 무애가처럼, 그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적단체 고무 찬양죄를 적용하자 오히려 그는 북한을 더욱 고무 찬양해야 통일이 된다며 거칠 것 없이 맞받아 친다. 진실에 서 있는 사람만이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함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없이 겸손하다. 그 스스로가 항상 강조했듯이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목사님이 그랬다. 한없이 겸손함.
"내가 찬양받고 싶다는 것. 그건 밀려오는 바다와 같이 무서운 시험이에요. .....하느님께 돌려야지 생각했지요."
-수도의 길로써는 프로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수도에 전문가란 있을 수 없다. 수도가 직업이어서는 안 된다. 수도자는 완성된 경지에 들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수도자는 언제나 초심자여야 한다. 수도자는 지금 자기가 도달한 경지를 언제나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어린애처럼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해답을 구하는 자세가 수도자의 자세다.'

그런 겸손은 또한 운동 속에서 헛된 과욕을 부리지 않게도 했다. 아니 이건 겸손이 아니라 목숨을 건 치열한 신앙고백이다. 계속된 단식을 만류하는 지인들에게 그는 "예수님이 내 나이까지 사셨으면 일을 얼마나 많이 하셨겠어? 너무도 엄청나게 일을 많이 하셨을거야. 그러나 그는 돌아가셨거든. 죽어서 큰 일을 하신거야. ....후배들이 잘 해주겠지."
"팔십, 백 살을 살아도 할 일은 남아 있는 법이야."

이제 책을 덮는다. 내 젊은 시절, 그가 없었다면 안그래도 황폐했던 내 영혼이 얼마나 더 황폐해졌을까.
10년 만에 그를 기린다. 영원한 청춘 문익환 목사님.

오늘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구절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며....
"수도자는 언제나 초심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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