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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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회피하고 싶은 그러나 그럴수록 나를 붙들어 매는 사람>

김진숙, <소금꽃 나무>, 후마니타스, 2007.



김진숙, 그를 보면 나는 아프다. 몹시도 아프다. 작년 그러니까 206년 1월 부산에서 있었던 전국역사교사모임 자주연수에서 그를 처음 봤다. 당당함, 해맑음, 도대체 저런 몸에서 어떻게 그런 깡다구가 나왔을까 싶었다. 고향 강화도에서 돈 벌러 나간 부산. 공장에서, 시내버스 문간에서, 그리고 한진중공업에서, 그 아슬아슬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잘도 버텼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안기부에서 취조 받던 이야기, 감옥 안에서 만난 살인범 이야기 등을 듣고 있을 때, 나는 그냥 울기만 했다. 주변에 동료 교사들이 죽 있었건만 전혀 그런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눈물만 흘렀다.
강연을 마치고 강당을 나갈 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짝 봤다. 멀리서 보았던 그 생생함만은 아니었다. 멀리서 볼 땐 그렇게도 맑고 어여쁜(?) 사람이더니, 가까이서 보니까 그 맑음 속에 고생 자욱이 가득했다. 그리곤 이내 나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그를 쳐다볼 용기가 없었다.
부끄러움, 자책, 부채감. 시대의 모순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아파하고 해결을 위해 실천적으로 나서야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나에게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제 많이 등이 따뜻해졌고, 배에도 적당히 살이 붙었나 보다. 그를 피하고만 싶었다. “고무 공장에서 신발 밑창에 풀칠을 해대느라 갈라 터진 아내의 손바닥을 볼 때마다 죄스러움으로 외면”하는 심정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어쩌지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생긴 기피였다.
그렇게 그를 잊었다. 그런데 올해 그가 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피하고 싶었다. 다시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의 책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무슨 힘인지 모르겠다. 책을 손에 넣고 읽어 가는데, 아픔은 이전보다 배로 다가왔다. 그때 강연했던 내용도 책에 더러 나왔다. 자꾸만 면도칼이 내 눈 앞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덮고 싶었으나 그래도 마치긴 했다. 책을 놓고 한 동안 멍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사람, 아니 진솔한 사람. 그는 그 험한 현장에서 노동자로써 단련된 줄만 알았는데, 글도 참 잘 썼다. 기교가 아니다. 예쁜 수식어가 아니다. 그저 투박한 언어뿐이다. 그런데도 심장을 향해 날이 팍팍 찍혀 온다. 진실의 힘이다. 진실하게 삶에 대응했기에 나오는 몸의 언어다. 프랑스 지식인들이 말하는 관념으로서의 몸이 아니다. 욕망의 주체로서의 몸이 아니다. 절규다. 생존을 향한, 그리고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향한 피울음이었다.
특히 요즘은 비정규직 문제로 노조가 어렵다. 노조가 단결하면 자본은 비정규직으로 갈아 버린다. 비정규직은 노조를 만들기가 어렵다. 이런 제기랄.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을까봐 경계한다. 거의 두 배의 급여를 받으면서, 아니 받기에 비정규직을 더 멀리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일 뿐이다. 그런데도 자기만 살겠다고 난리다. 이런 현실이 몹시도 그를 아프게 했던 모양이다.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급에 영혼을 파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의 끝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자본이 해야 할 말을 같은 노동자가 하게 되는 이 기가 막히는 상황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일 것입니다.”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천 원이 남으면 순대 한 봉지에 젓가락 여덟 개가 꽂히던 그 가난한 사랑은 얼마나 눈물겨웠는가. 남루했으나 아무도 부끄럽지 않았고 더러 울기는 했으나 아무도 외롭지 않았던 그 때 우리는 얼마나 당당했는가.” 그래 그 땐 외롭진 않았다. 비록 아프긴 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 역시 많이 외로움을 느낀다. 다들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루했으나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남루하지 않다. 하지만 많이 너무 많이도 부끄럽게 산다. 그래서 나는 김진숙의 글을 피하고 싶었던 게다.
그는 그래서 말한다.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그는 선생님들에게도 비정규직에 대해 관심 가지라며 어려운 충고를 한다. ‘아이들에게 인사도 채 못하고 떠나는 기간제 선생님의 소리 없는 눈물에는 상처를 받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주변의 기간제 선생님께 전혀 관심을 못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아프게 하는 글들은 많았다. 특히 노동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서 나는 한 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던 포철 학교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간혹 접하긴 한다. 워낙 큰 규모의 작업장이라 사고가 났다 하면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리는’ 대형 사고다. 형체 자체가 없어진다. 그런 사고가 늘 있었다. 수업을 하다가 갑자가 담임이 어느 학생을 부른다. 가방을 싸고 나오라는 부름이다. 순간 교실은 싸늘해진다. 대개가 그런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아들의 경우다. “누군가는 어이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그 원인에 대해 사고보고서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그 원인에 분노하며, 남일 같지 않은 죽음 앞에 가슴 쓸어내리며, 마누라에게도 차마 말 못할 자기 설움을 술잔에나 털어 부으며 꺼이꺼이 기막혀 했을 사람들.” 맞다. 그런 설움은 마누라에게도 말 못한다. 그저 꺼이꺼이 기막혀 하는 게 고작이다. 김현승 시인이 그리 말했다던가. “아버지의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의 절반은 눈물이다”라고.
희생자의 자식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백인의 열사보다 단 하나의 아빠가 아직은 더 절실한 아이들”이기에 그 고통과 아픔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 아이들이 컸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자기의 아빠에 대해, 그리고 그 시대에 대해, 그리고 그 시대의 지식인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라도 그 자식 중 하나가 훗날 내게 당신은 뭘 했냐고 한다면 나는 뭐라 답할까.
절망감만 밀려온다. “분노가 조직이 되지 못하는 현실, 통곡조차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 모여 있는 동안은 동지지만 흩어져 일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적이 되고, 경쟁 상대가 되는 현실” 이 현실 앞에 우리는 한 없이 작아져만 왔다. 그저 제 살길 찾아 나서기 만에 급급해 왔다.
이건 부채감이다. 그도 그랬다고 한다. “말당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을지 모를 일이나 나를 여기까지 꾸역꾸역 떠메고 온 9할은 사실 부채감이었다. 저들이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내가 먼저 떠날 수는 없는, 그러면 어디 가서 뭔 일을 하고 살더라도 필시 응징을 당하고야 말 것 같은·····.” 나 역시 부채감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김진숙을 외면하지 못하는 건 단지 부채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을 때 온 몸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눈물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열정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라고.
그도 그 스스로의 나약함을 말한다. 그런 고백 속에 오히려 더 강하게 태어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법정에 섰을 때의 글이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니 어쩌니 해도 전 막상 법 앞에 서면 겉으론 안 그런 척 해도 속으론 많이 떨려요.” 그러면서 그는 “법이 곧 정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같이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이 배가 등가죽에 붙어 가면서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더라도 그저 법이 정의이기만 한다면. 그렇다면······.”라고.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습니까? 그 폭력 앞에서 한 없이 비굴해지던, 살려만 준다면 글마들 발톱의 때라도 핥을 만큼 비굴해지던 스물여섯의 제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소름 끼칩니다. 오히려 그런 모습들 때문에 용기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용기야 말로 얼마나 찬란한 자유인지, 뼈가 시리지요.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요.”
다시 나를 추스른다. 거창한 일 못해도, 그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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