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콜린 워드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콜린 워드, <아니키즘, 대안의 상상력>, 돌베개, 2004.
2004년 10월 29일 초판 발행이라고 찍힌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책이다. 게다기 책 분량도 많지 않으면서 내용이 알차다. 어려운 이론보다 구체적 현실을 다룬 것도 장점이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 아나키즘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본다. 여러 보고서<에콜로지스트>에 따르면 2075년이면 자급적, 자율적 네트워크 공동체가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도 한다. 그 조짐은 이미 주변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녕 맑스의 시대는 간 것인가? 청춘을 맑스의 가르침으로 살아 온 나로서는 이제 그렇다고 말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정직하게 대답할 필요를 느낀다. 물론 맑스가 그 시대엔 최선의 대안이었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 시대엔 분명 맑스가 옳았고 바쿠닌이 틀렸다. 하지만 이제는 바쿠닌의 뒤를 있는 아나키스트 프로토프킨 등의 주장이 옳다.
1872년 제1인터내셔널에서 맑스에게 패배하곤 역사의 무대 뒤쪽으로 밀려났던 바쿠닌이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예언적인 글이 오늘에 와서야 그 빛를 발한다.
"마르크스는 권위적이고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공산주의자다.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평등의 성취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국가 내의 평등, 국가권력을 통한 평등, 막강한 즉 독재적인 과도정부의 독재를 통한 평등, 즉 자유의 부정을 통한 평등을 원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제형태는 국가가 토지와 자본을 독점하고, 국가 기술자의 지휘 아래 토지를 경작하고, 국가 자본으로 모은 산업적, 상업적 조직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국가를 해체하고 법(우리가 보기에 법이란 인권의 영구적인 부정이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것들을 폐지함으로써 완전한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성취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사회 재건과 인류 화합이 성취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방법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각종 권위나 사회주의 관료나 기술자나 그밖의 공인된 학자들을 통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굴레에서 해방된 모든 노동자 단체의 자유로운 연맹이라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힘이다"
이렇게 그들은 강력한 중앙통치를 거부했다. 물론 맑스라고 해서 그걸 꼭 하고 싶기야 했겠는가? 부르주아의 준동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계급독재를 원하긴 했었다. 그러나 중앙통치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건 역사가 이미 증명해 버렸다.
여기서 프루동의 비판도 듣고 가는 게 좋겠다.
"우리가 이룬 것이란, 겉으로는 인민 독재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민주주의였지만, 그 안에서 민중은 과거 절대왕정에서 가져온 원칙들로 구성되는 노예제를 승인해주는 것 이상으로 힘을 갖지는 못했다. 공권력의 독점, 과도한 중앙집권화, 분열적이라고 간주되는 모든 개인적, 자치적, 지역적 사고의 구조적 파괴, 엄중한 치안 등 모든 절대왕정의 방식들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마찬가지의 비판이다. 행정을 넘어선 통치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그 정치적 과잉은 빚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나키스들의 최고 원칙인 자발성을 완전히 갉아 먹는다.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건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조정하는 개인과 집단의 확장된 네트워크인 것이다. 아무리 인간해방, 노동해방을 부르짖었던 맑시즘도 어쩔 수 없이 범할 수밖에 없었던 피라미드 형 조직구조, 이걸 아나키스트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세우는 주장이 "피라미드에서 네트워크로"이다.
이 때 아나키스트들이 강조하는 건 직접행동, 자치, 노동자 경영권, 분권주의, 동맹주의이다. 간디의 경우도 직접행동이다. 넓게 본다면 간디 역시 아나키즘적 방식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직접행동은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준다. 대의민주주의가 최선인 양, 나의 권리를 사실상 특정의 소수에게 위임해 버린 나의 나태를 반성케 하기도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너무 정치중심적이고 정부기관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변의 환경을 바꾸려는 직접적인 노력의 효과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직접행동의 습관은 자유로운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살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로운 사람의 습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게 있어야 '자발적 질서 이론'이 자리잡을 수 있다. 아나키즘의 조직원리, 즉 리더쉽의 해체, 복잡성을 통한 조화, 우두머리 없는 동맹들도 이것이 있어야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80년 광주에서도 그 자발적 질서의 예를 보아왔다. 국가기관이 없을 때라야 오히려 그게 가능했던 경험말이다. 우두머리 없는 조직은 요듬 온라인 조직, 번개라든가, 노사모라등가 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이미 우리 사회는 아나키적 생활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근대 합리성이 이미 '철창'이라는 오명을 쓴지도 오래다. 이 철창을 깨고 나오는 건 인간의 존엄성과 책임감을 내세우는 그런 사회적 자기결정행동을 내세우는 아나키즘인 것이다.
자유는 질서의 아들이 아니라 그것의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