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파시즘 - 시사인물사전 11
강준만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강준만 외, <부드러운 파시즘>, 2000, 인물과사상사.

<인간은 왜 그렇게도 쉽게 복종하는가?>




보너스 북으로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했다. 많이, 근데 인물과사상사의 책을 대충 섭렵한 처지라 딱히 고를 게 없는 듯도 했다. 게다가 이 <부드러운 파시즘>은 2000년에 나온 책이라 이미 그 따끈한 맛도 없을 듯 했다. 그래도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 주제가 당길 것 같아서다.

한동안 임지현, 문부식 류가 주장한 '일상적 파시즘'과 유사할 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지만, 그들과 다른 코드를 가진 강준만이라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보니 분명 달랐다. 임지현 류의 일상적 파시즘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건 자칫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하며 책임 소재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강준만의 부드러운 파시즘은 그것과 다르다.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빠져든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기에 부드럽다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우선 파시즘의 원조라고 할 만한 뭇솔리니와 히틀러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야 워낙 많이 다뤄지는 인물들이라 특별한 것은 없었다. 물론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들지만, 히틀러 뭇솔리니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들을 떠받친 민중들의 심리구조, 그것이 어쩌면 더 큰 문제라는 것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일상적 파시즘과 맥이 통한다.

그런데 그런 심리적 구조를 아주 정확히 분석한 사람은 에리히 프롬이라고 한다. 솔직히 에리히 프롬에 대해 책 표지만을 봤을 뿐, 그에 대해 잘 몰랐다. 근데 이번에 강준만의 글을 통해 그를 접하자 바짝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조만간에 사서 봐야겠다. <소유냐 삶이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불복종에 대하여> 정도는 꼭 봐야겠다. 그래서 일단 이번 글은 강준만이 골라낸 프롬의 글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 속에 해소시켜서 그런 힘과 영광에 참여하려는 것"

그는 대중이 지배를 당하는 데서 느끼는 만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대중이 바라는 것은 강자의 승리요, 약자의 절멸이 아니면 무조건 항복이다."
"파시즘의 공통점은 원자처럼 세분된 개개의 인간에게 새로운 피난처와 안전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이며, 이러한 체제는 소외의 궁극적 결과라고 말한다."
"항상 자신이 무력하고 무의미하다고 느끼도록 돼 있는 개인은 그가 복종하고 숭배해야 하는 지도자, 국가, 조극에 모든 힘을 바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개인은 자유로부터 새로운 우상 숭배로 도피하는 것이다."
"근대인은 아직도 모든 종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도록 갈망되고 있거나 유혹 당하고 있다. 아니면 기계 속의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로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유를 상실하고 있으며, 잘 먹고 잘 입고있긴 하나 자유인이 아닌 자동인형이 되고 말았다."

정확한 지적이다.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고 자유인인 아니라 자동인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은 그러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주체적 존재라고 착각하면서 산다. 세상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면서. 그걸 프롬은 이렇게 본질을 밝혀낸다.
"보통 사람은 박물관에 가서 렘브란트와 같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면 아름답고 인상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판단을 분석해 보면 그는 그 그림에 대해 어떤 특별한 내적 반응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림이 일반에게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 그림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우리는 본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아라는 무거운 짐을 제거함으로써 안정감을 얻고자 한다. 어떤 강력한 집단에 소속되거나 그 집단과 동일시 되는 효과를 추구함으로써 무언가 안전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며 그게 바로 프롬이 말하는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서 자기를 상실하는 일' 또는 '자유라는 짐에서 벗어나는 일'과 통하는 것이다-이건 강준만의 단 토.
역시 강준만이 붙인 말. "한국인의 다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무조건 둥글게 둥글게 사는 게 좋다고 믿는 사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걸 확신하고 그걸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 자기보다 힘이 강한 사람에 대해선 무한대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복종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모두 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프롬. "왜 인간은 그다지도 쉽게 복종하는가? 그리고 불복종하는 것은 왜 그렇게도 어려운가? 스스로 국가나 교회 혹은 일반적인 여론에 복종하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황우석 애국주의에 우르르 편승했던 것이다. 자유인이 아니라 자동인형들, 그들은 무력감과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개인은 자신에게 안전감을 주고 회의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는 새로운 권위에 쉽게 굴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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