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바이러스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진중권, <빨간 바이러스>, 2004, 아웃사이더.




<부조리한 현실에 날리는 통렬한 비웃음, 그리고 그 이후>

진중권,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천재적 머리에는 경탄했지만, 왠지 인간미는 느낄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여겼다. 그를 만난 것도 벌써 5년 전인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그런가. 글로 만날 때와 달리 실제 직접 만나니 그 역시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목사였다는 사실 역시 새로운 충격이었다. 목사 아들이 저렇게도 사람을 잘 긁어대고, 빈정대는가 하는 그런 감정 말이다.

이번 <빨간 바이러스>는 그 동안 그가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에다 뒤에 몇 꼭지를 더 붙여 펴낸 책이다. 한 마디로 역시 진중권이다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번득이는 기지, 어디서 도대체 저런 생각을 뽑아낼 수 있었을까.

그의 특징은 비웃음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부조리한 권력과 자본에 아주 시니컬한 비웃음을 날려 버리는 것이다. 이건 김어준식의 통쾌한 똥침과도 다르다. 상대를 아주 무기력하게 만들 정도로 비웃어 버리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하며 나름의 논리를 대며 한 판 붙을 준비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판 전체를 뒤집어버릴 비웃음으로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적이 많다. 소위 운동 진영 안에서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준만과도 예전에 책 두 권 분량의 논쟁이 오갔다. 내가 보기에 결국 강준만이 졌다. 왜냐면 그는 진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중권은 진지하지가 않다. 모든 걸 희화시켜 버린다. 그러니 진지하게 폼 잡은 사람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 책도 역시 그랬다. 우선 재미있는 대목을 옮긴다.

최병렬에 대한 비판부분이다. "대체 어느 나라 보수정당의 대표가 남의 국기나 불태우는 맹동주의자들의 과격시위를 거들고 앉았는가? 앞으로 철분 섭취 좀 하셔야겠다."

역시 최병렬이 단식할 때 보냈던 야유. "목숨을 건 비극적인 단식투'쟁'이 이제는 뱃살을 건 우스운 단식투'정'으로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열린우리당은 가진 국민의, 가진 국민에 의한, 가진 국민을 위한 정당"

"타오르는 몸뚱이에서 나오는 절규는 못 들어도 골프장 그린에서 오가는 보수층의 잡담에는 민감하다"

"대한민국처럼 자본주의적인 나라도 없다. 그 징그러움을 인간의 얼굴로 가리려는 최소한의 화장술마저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노골적일 때, 인간들은 천박해진다......자연을 '자원'으로 보는 인간들은 나아가 다른 인간 역시 품위를 갖춘 인격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자원'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천박한 사고방식을 우리는 정부에서 나서서 권장하고 다닌다......'교육인적자원부'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교육을 담당했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무식하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천박함"


"생존권보다 소유권이 더 신성한 우리나라....우리 아이가 앞으로 이런 야수들 틈에 섞여 살아야 한다.....2%정당 어쩌고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내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알량한 자선 대신에 굳건한 연대를 우리사회의 원리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끔찍해도 나올 희망이 있다면, 아직 살 만한 곳이다. 그러나 빠져나올 희망이 없다면, 유황불이 없어도 그곳은 곧 지옥이 된다."

"햐, 하나님은 대체 뭐하시는지 모르겠다. 쌔고 쌘 게 천둥벼락인데, 그 중 하나 아껴두었다가 이런 싸가지 없는 말을 하는 종이 있으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치듯이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쌔려버리시지."

"잔인함도 익숙해지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해괴한 당연함을 비로소 잔인함으로 느끼게 해주는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다."

"공론의 장을 수호하는 게 소위 지식인의 역살이다. 우리의 지식인들은 상당히 소심하거나 경우에 따라선 기회주의적이다. 이미 200년 전 쉴러는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얘기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

"인간에게 남은 길은 두 개뿐.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유대의 백성이 되거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빌라도가 되거나...."
-여기선 황우석 애국주의를 외치는 우리 백성들과 방폐장 달라고 외치는 주민들이 떠오른다. 진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그 백성들, 여기도 많다.

"분노가 지나치면 허탈해지는 법. 이 대목에서 참았던 분노가 실없는 웃음이 되어 피식 새어 나온다."

여기까지 읽다보면 그 동안 절필했던 내가 다시 사회적 발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끔가끔은 새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진중권 역시 나중엔 나의 침묵을 정당화하는 글을 쓰고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보다 공론의 영역, 즉 좌와 우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차이, 여당과 야당의 차이를 넘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성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공론의 영역이 사라질 때, 어차피 지식인이 할 일은 없어지는 것이다. 공론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지식인이 할 일을 찾다가는 결국 어느 한 편을 들어 권력에 붙은 어용이 되거나, 권력만도 못한 수구가 되기 쉽다."
"또 하나는 매체의 변화다. ....... 인터넷에서 보는 것은 합리적 논증이나 진지한 토론이 아니라, '쪽수'의 물리량을 동원한 힘과 힘의 원초적인 부딪힘이다. "
"오늘날 지식인은 과거에 누렸던 '권위'를 잃어 버렸다. 이것은 진보적이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논리'의 권위도 사라졌다. 이것은 반동적이다. 오늘날 대중은 과거에 누리지 못한 '힘'을 획득했다. 이것은 진보적이다. 하지만 그 힘은 '논리'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쪽수의 물리량과 익명성의 보호막 위에 서 있다. 이것은 반동적이다. 하여튼 재미있는 현상이다.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초현대적인 미디어를 통해 흐르는 것은 논리의 빈곤, 열정의 과잉과 같은 전근대적인 에너지다. 발달한 기술과 미발달한 인성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의 크기만큼 사회는 우주적이다."

고로 지금 내가 이빨로, 글로 할 일은 없다. 당분간 좀 더 침묵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고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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