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인터뷰 특강 시리즈 1
홍세화,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교양없음'을 격파하는 유쾌한 교양

박노자 외,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한겨레신문사, 2004.




보고 싶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뤘다. 워낙 스타 필진이 깔려 있어서 보고 싶었던 것이지만, 또한 똑 같은 이유 때문에 미뤘던 것이다. 뻔히 다 아는 이야기이지 않겠느냐는 그런 게으름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에게선 배울 게 많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그렇지만 그들의 삶 그 자체도 내겐 중요한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먼저 박노자, <한겨레21> 고경태 기자가 쓴 필진들에 대한 소개에서 고경태는 박노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술은 단 한잔도 입에 못 댄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쾌락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 보는 일과 산책 이외의 시간엔 오로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벌레, 연구벌레다.

연구벌레의 글이어서 그런가. 이 책에 실린 다른 글보다 전하는 게 컸다. 아니 사실은 지금의 내 관심에 가장 부합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홍세화의 물질적 이기심에 대한 질타나 하종강이 전하는 참된 삶의 의미, 한홍구의 희망의 역사 등도 모두 그 깊은 맛이 있었으나 박노자의 그것이 오늘의 내게는 가장 커다란 관심이었다.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고구러가 강대국이어서가 아니라 개방과 다양성을 띤 나라라서 좋다는 박노자, 그는 근대 이후에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민족'의 허상을 밝힌다. 그러면서 근대와 전근대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시정하려 노력한다.
흔히 우리는 전근대를 모자란 것으로 근대를 모범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다 보니 근대를 빨리 이룬 서구의 가치관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사회 학교.군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전근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조선시대에서 이어온 악습이 아니라 19세기 말 독일 군대의 훈육방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화되었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접대문화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확립된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전근대에 죄를 돌릴 것이 아니라, 근대의 문제부터 들춰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일본의 천황 숭배도 메이지유신의 작품이다. 2600년 전부터 신무천황의 황통을 받았다고 말해지고 있으나 이것은 허구인 것과 마찬가지다. 신문, 군대, 학교 등의 기제가 이런 조작을 강화한다.

열린민족주의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단 1주일만이라도 입국 자유화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민족주의는 진실성을 가질 것이라고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질타하기도 한다.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

그의 마지막 인사는 매천 황현의 글에서 따왔다. 원문은 생략하고 번역문만 싣는다.
"고고한 현직을 원하지 말고 가난을 싫어하지 마라
그리고 아름다운 나라를 마음대로 거닐면서 계속 천진한 마음을 가져라."

다음으로는 우리시대의 구라, 한홍구.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을 가진 국민들이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는 모순을 아프게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얼마나 기억하느냐, 얼마나 많은 실천이 더해지느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고 희망의 역사를 피력한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용기와 실천"
"여러분들의 작은 기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 더 확실한 것은 여러분들이 기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죽었다 깨나도 안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세화, 아름다운 사람 홍세화 선생의 글이 이어진다.
"사회문화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긴장보다는 물질적 욕구에 일차적 관심을 갖고 있는"한국사회에 대한 아픈 지적. 그러기에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의 항체를 갖추"라고 말한다. 공화국에 살면서도 전혀 공(PUBLIC)하지 못한 한국사회, 공공적 요구를 내세우면 곧바로 '빨갱이' 매도가 이어지는 한국사회.
그러나 홍세화는 "진보는 느린 걸음"이라며 계속해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후배들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경쟁과 물신주의 대신 연대의식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수가 아무리 혁명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다수의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보다 혁명적이지 않다"는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결국 각자는 자기의 존재 미학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삶들을 살길 그는 희망한다.

'너희가 노동문제를 아느냐'며 질타하는 하종강.
그의 말대로 나는 노동문제를 잘 몰랐다. 시민법과 사회법의 충돌에서 제대로 된 사회라면 사회법이 앞서야 하는데도 우리사회는 약육강식의 시민법만이 절대진리인양 춤을 춘다.

"남사당패에서 줄 타는 광대가 부채 하나만 들고 줄에 올라갑니다. 광대의 부채는 언제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펼쳐져야 해요. 중립을 지켜야 할 것 아니냐, 똑똑한 척 하고 부채를 가운데로 들면 바로 떨어집니다. 그게 양비론입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옳은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겁니다. 자신의 부채를 어느 쪽으로 펼쳐야 할지 항상 고민하면서 살자는 겁니다. 나는 권력과 자본 그리고 노동자 사이에서 공정하게 중립을 유지할 거야. 이런 건 우리사회에서 불가능합니다. 어느 것이 가치 있는 삶이겠어요?"

정문태, 솔직히 나는 이 사람 이름을 처음 들었다. 국제 분쟁지역 전문기자라고 한다. 전쟁지역을 쫓아다니며 오랜 시간 취재를 했던 사람인 모양이다. 국익을 따라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입장에서 기사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종군기자'아 아니라 '전쟁지 기자'가 맞는 것 같다.

뒤에 영화배우 오지혜와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다우드 쿠탑의 글이 이어진다. "살람" 그 말 뜻은 평화다.
'살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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