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산업 - 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노르만 핀켈슈타인 지음, 신현승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노르만 핀켈슈타인, <홀로코스트 산업>, 한겨레신문사, 2004.


조숙했었나? 내가 영화를 좋아한 건 좀 빠르다. 중학생 때 장미희 주연의 그 유명한 영화 <겨울영화>를 볼 정도였으니. 물론 미성년자 관람불가다. 허긴 그 때 이미 깬 놈들은 나보다 더 일찍 그런 심미안(?)을 갖추고 있었다.

근데, 난 지금은 거의 영화를 보질 않는다. 언제부턴가 싫어졌다. 영화가 내게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가 삶의 진실을 보여주기 보단 오히려 왜곡하고 은폐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면서부터다.

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도 보질 않았다. 정성일의 영화평을 읽어보니 안 봐도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시끄럽게 만드는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 역시 마찬가지다.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뻔할 것 같다. 사람들이 실없이 몰리는 그런 영화에서 얻을 건 상술 이외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유태인 학살을 다룬 영화이면서도 <인생은 아름다워>, 그것은 달랐다. 글쎄, 어린 아이가 주요 화소가 되어서일까? 확실히 그 작품은 삶의 진지함을 보여 줬다.

그 느낌 좋았던 영화가 최근 한겨레에서 낸 책 <홀로코스트 산업>광고 카피에 잠깐 등장하기에 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감동 받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보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고른 건, 꼭 그것만은 아니다. 삶의 치열함을 다루는 소재가 흔히 연애 장난으로 분칠될 때, 역사공부하는 나로서는 화가 치밀었고, 그런만큼 우리 현대사가 장사속에 놀아날 때, 그 때 느꼈던 심정을 이 책은 비슷한 맥락으로 나를 정히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랬다. 홀로코스트은 이미 희생 그 자체로 끝난 게 아니었다. 사실 빈곤한 생존자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홀로코스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신화를 조작해 윤리적 자본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당성, 부를 쌓아가는 못된 인간들에 대한 고발이자 기록이었기에 울림이 컸다.

홀로코스트는 이제 신화다. 신비화되고 성역화되었다. 그걸 건드는 놈은 죽일 놈이다. 그러니 이건 무소불의의 권력이 된다. 그 중심엔 미국거주 유대인과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미국정권이 있다.

미국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인디언 학살, 흑인 학살, 한국전쟁에서의 학살, 베트남에서의 학살에 대해선 애써 눈을 감는다. 그러면서 유대인 학살만을 문제삼는다. 그건 그것을 들이밀며 그들의 부도덕에 면죄부를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이미 유대인은 희생자다. 이건 하늘이 내린 유일 진리다. 그러니 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기억을 부 축적의 도구르 삼는 무서운 놈들, 이게 바로 홀로코스트 산업의 본질이다.

솔직히 말하자. 내가 이 책을 손에 쥔 건, 4.3의 타락 때문이다. 제주MBC와 제민일보가 일주일 간격으로 4.3평화국제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미 4.3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으로 권력을 다지려는 기득권층의 도구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산업과 본질상 다르지 않다.

독립운동가들은 무대에서 초라하게 퇴장하고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놈, 혹은 그들을 잡아가던 친일파들이 주류로 등장한다. 이제 4.3도 그꼴이 되는 건가. 타락하는 4.3이 걱정된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미국에민 있는 게 결코 아니다.
2004. 3. 4에 끄적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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