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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는 한일사 1 -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 선사 시대~고려 시대 ㅣ 마주 보는 한일사 1
전국역사교사모임.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엮음 / 사계절 / 2006년 8월
평점 :
<일본서기> 그 탄생 배경을 알다
전국역사교사모임·역사교육자협의회, <마주보는 한일사 1>, 사계절, 2006.

우리 모임과 일본의 모임이 합심하여 만든 책이다. 전에 2권부터 읽었다. 늦게야 1권을 읽는다. 일본에 계신 분들과 우리모임이 조율하면서 낸 책이라, 조금씩 다가오는 일본을 알기 위해선 제격인 셈이다. 부제가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런 만큼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많다.
그런데도 좁히기 어려운 점들은 있어 보인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다 사람들’의 경우는 심하다. 이 부분은 어쩌면 우리 모임의 선생님이 가진 편견보다 한국인들의 가진 편견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구를 주제로 한국에선 신도봉중학교의 문주영 선생님이, 일본에선 이오야마 대학의 도리야마 다케오 선생님이 썼다.
왜구 문제, 우리는 일단 피해의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객관적 분석보단 감성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게 넘기 어려운 지점인 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건 주로 전기 왜구다. 14, 15세기의 왜구다. 통계를 보면 1370년대와 1380년대 즉 고려 말이 가장 극성기임을 알게 된다. 당시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 이후 전개된 남북조 시대였다. 단일 권력이 일본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 때다. 그래서 고려 정부의 항의에 일본은 최선을 다해 방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왜구의 활동을 그들로서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한다. 이건 단순한 핑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정부에서 말하길 “지금 우리나라 서해도 일대와 규슈에는 난신들이 할거하고 있으면서 벌써 20년이나 공납을 바치지 아니한다. 그런데 서쪽 바다 지역의 우매한 백성들이 틈을 보아 귀국을 침공하는데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장수를 보내어 토벌하는데, 그 지방에 깊이 들어가서 날마다 서로 싸우고 있다. 이제 규슈만 평정하면 해적들을 금지할 수 있음을 하늘에 맹세하고 약속하는 바이다.<고려사 열전>”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전기 왜구가 아니라 후기 왜구다. 제주 역사와도 관련이 깊은 건 바로 그 후기 왜구이기도 하다. 16세기 활동기 왜구를 말한다. 이미 고려말 그리고 조선 세종 때 쓰시마 정벌 등으로 강력하게 대응했고, 일본의 국정 역시 통일 권력이 생기면서 전기 왜구는 많이 정리되었다. 그러자 예전처럼 노략질하기 어려워진 해양세력은 교역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물론 여차하면 다시 약탈을 병행하긴 하다.
근데 문제는 이들 왜구의 주체와 성격이다. 일본 학계에서는 1960년대 이후엔 주로 ‘후기 왜구를 중국 국내 사정으로 인해 발생한 밀무역에 초점을 둔 상인’으로 규정하는 게 보편적인 연구였다. 물론 전기 왜구에 대해선 거의 대부분 학자들이 일본인 해적으로 보고 있다. 여기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후기 왜구다.
이들에 대해 1980년대엔 고려·조선인이 왜구의 주체라는 학설이 등장했다. 제주도 해민과 왜구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뒤 1990년대에는 왜구를 ‘중국·조선·일본의 경계 지역에 살던 국적과 민족을 초월한 집단으로 이해하려는 지역 이론이 일본 학계에서 제기되었다. 내가 동조하는 건 바로 이 견해다. 그래서 힘들다. 국내에선 수용되기 힘들다. 과학적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이다. 과학이 아니라 정서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사료가 풍부한 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 부분을 집필한 문주영 선생마저도 “지금까지의 연구가 자기 나라 역사 인식의 틀 속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주영 선생 역시 동감하지만 국내 정서가 두렵다는 말 같다.
일본 측 저술에 따르면 후기 왜구는 해적이면서, 쓰시마의 실력자, 상인, 조선 국왕의 관직을 받은 자 등 복잡한 국면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현해탄과 동중국해 해상 교역의 역사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또 하나 관심을 가지게 했던 건 바로 <일본서기>라는 책이다. 한 章이 그것을 다뤘다. 덕분에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 동안 국내 학자들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사료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고, 일본 측에선 그들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신뢰할 책이라 했다. 그런 평행선 때문에 난감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제주 향토사 연구에서도 필요에 따라 이 책을 인용했다. 아전인수의 해석이 필요할 때만 그랬던 것이다. 참으로 애국적(?)인 연구 자세라 하겠다.
근데 이번에 그 내용을 엿보았더니 문제가 있긴 있는 책이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사건이 그대로 나오고 있는데 <일본서기>는 그 사건을 고스란히 120년 끌어 올려 쓰고 있다. 필요한 곳에서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일본서기>가 역사적 사실을 일부 담고 있긴 하되, 필요에 따라서 연도를 올려 잡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본 역사의 유구함을 나타낼 필요성이 있는 곳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일을 했던 것일까. 673년 덴무 천황은 체제를 완전히 정비하려고 한다. 이 시기는 당나라에 의해 한반도가 완전히 무너진 뒤다. 특히 왜는 백제에 구원병을 파견했던 뒤라, 당나라의 보복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방법은 하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위기가 그들의 단결을 가져온 셈이다. 그래서 그른 율령제정, 국사 편찬, 수도 건설 등에 매진한다.
<일본서기>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덴무천황은 681년 <일본서기>편찬을 명령한다. 그 완성은 720년의 일이다. 왜(야마토)가 아닌 ‘일본’이 처음으로 외교문서에 등장한 것은 701년의 일이다. 그런 정치적 의도에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일본서기>다. 그러기에 그냥 내칠 사료도 아니면 전적으로 신뢰할 사료도 아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 <일본서기>에 실린 전설이나 신화를 통해 고대 귀족들의 사고방식을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또 5세기 이후의 기록을 바탕으로 고대 국가 형성 과정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비판적 검토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