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는 한일사 2 -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 조선 시대~개항기 마주 보는 한일사 2
전국역사교사모임.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엮음 / 사계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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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멀기만 한 일본
전국역사교사모임·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 <마주보는 한일사 2>, 사계절, 2006.



일본어 손댄지가 벌써 몇 년인가. 그래도 까막눈이다. 한 달 공부하고 석 달 쉬고, 다시 한 달 공부하고 넉 달 쉬고. 그러니 맨 날 1장, 2장만 반복한다. 내 연구 테마는 반드시 일본 책을 보아야 할 구석이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양이니.
일본어가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우선은 일본 역사와 사회라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반갑게도 우리 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이 일본 선생님들과 함께 한국, 일본의 역사를 마주하며 엮었다. 예를 들어 한글과 가나, 한국의 건축과 일본의 건축 등으로 세트를 이뤘다. 반가웠다. 그래서 얼른 샀다.
그리고 단숨에 읽긴 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 보니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일본의 건축물, 다다미를 깔아놓은 그런 집을 ‘니혼마’라고 하는구나. 일본 정원 ‘가레산스’. 확실히 조선의 그것과는 다르다. 일본은 축소하여 어떻게든 정원 안으로 집어넣는다. 근데 조선은 아니다. 밖에 눈다. 자연을 그대로 둔 채 집 안에서 감상한다.
무엇보다 새롭게 알 게 된 것은 무사다. 흔히 사무라이라고 하는. 그들에 대해 나는 그 동안 칼만 쓰는 닌자, 조폭으로만 생각했다. 근데 사실은 그것과 많이 다르다. 에도 막부 시기엔 주로 행정 업무에 종사하는 하급 관원이 오히려 사무라이의 일반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본 성의 구조를 다시 보았다. 안쪽에 해자, 그 안에는 관청, 창고, 마구간 그리고 다이묘가 사는 저택이 잇다. 여기 다이묘를 모시는 가신과 상급 무사(하타 모토)가 있다. 가운데 해자 바깥 구역엔 큰 길을 따라 쵸닌(상인과 기술자)이 모여 살았다. 그 바깥에는 신사와 사원이 있고 중급 무사가 살았다. 이와 같은 성 주변 취락을 조카마치라고 한다.
식사는 하루 두 끼였다고 한다. 17세기 이후에 와서 세 끼로 늘었다. 육류를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 먹지 않았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건 예전에 이규배의 글에서 읽은 바가 있다.
건물 안에 ‘이로리’라고 하는 취사 난방 시설도 특이했다. 제주 초가의 봉당과 유사하나 많이 다르긴 하다.
암튼 많이 멀다. 아직도 일본은 내게 낯설다. 언어부터 익숙해져야 그 세상을 본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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