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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사 - 21세기 파국과 인간의 전진
W.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 교양인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워런 와거 지음, 이순호 옮김, <인류의 미래사>, 2006, 교양인.

또 속았다는 느낌이다. 분명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평 코너에서 줏은 것인데, 서평과는 달리,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몽롱하기만 했다. 월러스틴 같은 대학자가 좋은 평을 써주기까지 했는데, 왜 나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내내 몽롱했던 것일까. 책이 문제 있는 것일까, 내가 문제 있는 것일까. 후자다. 단연코 나에게 문제가 있다.
미래를 통찰할 만큼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였다. 물론 서평에선,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아나키즘을 중요하게 내세우고 있다고 했기에, 나는 '그럼 그렇지' 인류 미래의 대안은 아나키즘이야' 하면서 주저 없이 책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아나키즘이 상세히 다뤄지진 않는다. 그냥 미래 사회를 예측하면서 아나키적 조직 원리도 잠깐 활용했다는 느낌이다. 치밀한 과학서보다는 공상과학 소설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월러스틴 등 서평자들은 그런 공상 소설을 넘어서 탄탄한 사회과학적 근거를 갖추고 쓴 미래학의 대표작이라고 칭찬했다. 그래서 내가 갑갑하다. 나는 그런 공감을 못했기 때문이다.
암튼 저자는 많은 노력을 했다. 과거 역사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어떤 단서를 잡고서 만들어 가듯이, 미래 역사 역시 전혀 못할 건 아니라는 논리로 글을 풀어간다. 현재까지 나타난 여러 단서를 가지고 미래를 짜 맞춰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이 부분은.
그래서 저자가 예측하는 미래는 여러 단계를 보여준다. 먼저 자본주의가 지금보다 더 극을 향해 달려간다. 국가, 국경을 넘어 자본이 지배한다. 사실 세계 10대 기업이 사실상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이에 저항하는 소국들은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앞으로 자본주의의 야만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동안은 그럴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참으로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나 이후의 세대에게 희망이 있기에 견딜 만도 하다. 선구자적 삶으로 그것을 증거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극에 달한 자본주의의 끝은 파국이다. 2044년 세계3차대전이 터진다. 자본이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 엄청난 재난이다. 그리고 나면 그 동안 암약하던 '세계당'이 세계를 장악한다. 이 ‘세계당’은 과거 사회주의적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 당연하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볼대로 본 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당’이 만든 게 세계연방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거의 극복했다. 성장보다는 삶의 질이다. 누구나 성장을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참으로 좋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모순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경제는 그럭저럭 견디겠지만, ‘세계당’이 세계를 장악하다 보니 획일화가 문제다. 그래서 결국 터진다. ‘세계당’ 이후 세력을 키워간 것은 '작은당'이다. 슈마허로부터 시작된 이 '작은'은 결국 세계에 그 세포를 넓혔던 것이다. 이게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맹점으로 자주 지적되고 있는 파편화, 분산화에 대해서는 이 책도 별다른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서는 우주 개발, 우주 이민 등의 공상과학으로 넘어간다. 자본주의-사회주의-아나키즘으로 전환하는 미래를 현재의 사회과학을 바탕으로 잘 구성한 듯은 하지만, 왠지 뒤로 가면서 자꾸만 공상과학으로 읽혀진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만큼 나는 미래를 보는 눈이 좁아서 그럴 것이다.
암튼 그래서인지, 내내 몽롱했다. 본시 나는 공상과학 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스타워즈도 그랬고, 매트릭스도 그랬다. 그런 냄새, 이건 미래를 말하면서도 철저히 자본주의적이고, 미국식이다.
그보다 나는 인류의 미래를 다른 곳에서 찾고 싶다. 완전한 전환이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재앙 이후의 일이지 싶다. 그 재앙 이후에 인류는 커다란 성찰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책에서는 세계연방이겠지만, 나에게는 동양적 사상, 자발적 가난으로의 세계라고 믿고 싶다. 물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런 정서가 나의 바닥에 깔려서인지, 이 책 같은 공상 과학적 미래관 하고는 쉽게 친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편협할 필요는 없다. 넓게 읽고 크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몽롱하긴 했지만, 그래도 먼 미래를 한 번 슬쩍 쳐다보는 기쁨은 있었다. 물론 내가 죽은 이후의 세상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