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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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를 읽는 내내 마음이 참 쓸쓸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면 나는 군사 독재의 정치 상황아래 학교를 다녔다. [시인 동주]를 읽으면서 새삼 일제의 한반도 강점기때와 군사독재시대아래의 학교 모습이 참 많이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고때 교과목 중에 교련이있었다. 정규수업 시간에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교련시간에 열병분열을 하던 생각이 났다. 반공을 앞세워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던것이다. 그러면서 두발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가방이나 신발, 교복까지 참 엄격했다. 분명 나라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해서 자주국이 되었지만 제도나 사상등은 80년대까지도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시절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나같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떠올리면 뭔가 불안하고 쓸쓸하고 암울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시인 동주]를 읽는 내내 암울했다. 물론 그 시절이 암울한 시절이었고 윤동주라는 시인의 시들이 주는 무게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었다. 윤동주라는 참 훌륭한 시인이 전쟁 수행을 위한 생체실험으로 인해 죽어갔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결코 일본의 전범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일본의 위정자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얕잡아보는 행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안소영 작가가 윤동주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쓰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을 것이다. 지금도 현존하는 지인들이 꽤 많아서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 자신의 생각을 보태기도 어려웠을 것이다.그래서 이 작품에 그려놓은 윤동주라는 인물이 실제와 참 많이 닮아 있을 거라는 것도 짐작되었다.  윤동주 시인은 '참 진중한 분이었구나, 그리고 진정한 시인이었구나, 고뇌하는 조선의 청년이었구나' 하고 생각햇다.  

 그리고 그시절 일제에 협조해서 조선의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모는데 앞장섰던 소위 지식인이라 일컬어지던 사람들에게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도 없었다. 40년가까운 세월을 일본이 강제점령하고 있었으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협조하지 않을 수 도 없었겠다고 이해해 줄 수는 있었다. 그래서 끝까진 지조를 지키지 못하고 좌절해버린 지성들이 참 안타까웠다. 그러나 끝까지 협조하지 않고 절개를 지켰거나 더 나아가서 독립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집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집안이다. 한학을 하신 할아버지는 집안이 제법 넉넉한 편이었지만 일제가 강점하고 있을 당시에 자식들을 아예 학교에 보내시지 않았다. 왜놈들의 학문이라 가르칠 수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하셨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무학이다. 단 삼촌은 조선이 독립한 후에 학교를 다니셨다.  그래서 무학이라 관에 취직할 일이 없었고 창씨개명을 하지않고 그 시절을 살아 내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으로는 너무나 학교에 가고싶어서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학교를 보내달라고 졸랐지만 할아버지께서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우리집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 자식들을 교육시키려 생각한 사람들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인 동주] 속에 나오는 시들을 읽으면서 여학교때 줄줄 외워고, 수첩마다 꼭 써두었던 기억이 새록새록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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