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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요즘 세대들이 열광하는 작가는 누구일까? 세대가 많이 다르니 좋아하는 작가도 참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열광하는 작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김연수, 박민수, 정유정, 김애란 정도가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고, 외국 작가라면 더글라스 케네디나 알랭드 보통 정도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작가라 짐작한다. 여기서 일본작가는 빼고 얘기했다. 잘 나가는 일본 작가들은 엄격히 따지면 요즘 세대라기보다 우리 세대의 작가들이어서 말이다. 무라카미, 히가시노, 미미여사, 오꾸다 히데오. 등등...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무렵에는 TV가 없는 집도 꽤 있었다. 시골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이 많았고, 도시에도 TV가 있는 집이 드물었다. 살림살이가 궁색하지 않았던 우리집에도 TV를 설치한 게 70년대 초였다. 그러니 TV를 보려고 만화방이나 동네 TV있는 집에 돈을 내고 가기도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지적 흥미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돌파구는 책이었다. 지금은 책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때는 책도 귀했다. 8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난 나는 다행히 언니, 오빠들이 보던 책이 많았다. 특히 큰오빠가 보는 책들은 꽤 괜찮았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언니가 읽던 시집이나 오빠가 보던 철학 서적까지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중학생 이던 내가 이해 못하는 책도 꽤 있었다. 특히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같은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뜻을 이해하려고 읽었다기보다 이 책을 다 읽어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서 눈으로 훑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책들을 눈으로 훑은 것이 약이 된 것일까?
헤세를 만났을 때 헤세의 책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수레바퀴아래서,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데미안... 같은 책들이 술술 읽혔다. 당시에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히트를 치고 있어서 한때 꼭 독일로 유학을 하리라 다짐했을 정도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헤세라는 사람의 생각들을 내가 왜 사랑했는지 바로 알아 차렸다. 그는 자신의 지적 우월을 자랑하지 않았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폄하하지도 않았다. 젊은 작가에게는 따뜻한 시선으로 조언이 될 말들을 해 주었고 기존 작가의 책들은 성심을 다해 서평해 주었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은 헤세가 출판사의 의뢰로 책에 대한 평을 써 준 것들을 엮어서 내 놓은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원고료를 받고 써 주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일까? 서평이 참 긍정적이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헤세는 절대 돈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줄을 알기에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언급된 책들이나 작가들은 대부분 세계문학전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작가도 있었다. 확실히 내가 아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내가 느꼈던 것들과 비교하며 “어?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하면서 환호하기도 하고 “그런 깊은 사상을 담은 책은 아닌 것 같았는데”하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아무튼 동서양을 넘나들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사상에 대해서 엄청난 독서를 한 헤세가 정말 존경스러웠다.
동양사상을 처음 접한 헤세가 낯설어하면서도 관심을 가지는 모습에서는 사고가 유연한 학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고 호기심에 가득 찬 학생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금 내 나이가 헤세가 서평을 쓰던 때와 비슷하다. 그러니 인생을 보는 느낌이랑 책에서 취하는 것들이 비슷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 주 이 책이 날 참 행복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