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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웃음판 - 한시로 읽는 사계절의 시정
정민 지음, 김점선 그림 / 사계절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한문 지도사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하고 있다기 보다 그냥 한문지도사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고 해야 맞다.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마다 수업이 있는데 아직 결석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업시간외에 책을 한번도 펼쳐보지 않았으니 공부를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냥 강의를 하나 듣고 있는 것이다.
남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하는 의도 이기도 하고 이미 알고 있는 글자라도 붙들고 싶은 조급함도 조금 보태어졌다.
어문회 1급에 합격하고 진흥회 사범 시험에도 합격한 후로 한 3년 한자와 담 쌓고 살았더니 그동안 알고 있던 한자조차 까먹고 있다는걸 알았다.
한문지도사 공부는 한문을 지도하는 사람을 위한 수업이다보니 한자공부외에 한문에 대한 여러가지를 폭넓게 공부하고 있다.
한문문법, 한시, 사서삼경, 고문등을 고루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내가 한문지도사 공부를 시작하기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 점은 역시 한시공부이다. 한시를 나름 조금 알고 있었지만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지 못했는데 이 공부를 계기로 한시를 제대로 공부하고 넘어가야 겠다고 다짐했다.
[꽃들의 웃음판]은 정민 선생님이 한시의 시정을 계절별로 나누어서 김점선님의 그림과 함께 엮은 시집이다.
나도 예전에 한시에 대해서는 조금 배웠다.
그래서 한시를 짓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잘지은 한시는 내용에 시정이 넘친다고 해서 잘된 것이 아니다. 시라는 것이 노래이다 보니 특히 한시에서는 압운을 잘 지켜야 하고, 성조도 잘 살려야 하며 거기다가 대우(댓구)또한 잘 맞추어야 잘 지은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잘 지켜져야 잘 된 시라한다. 내가 한시를 지을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운율을 맞추는 것이었다. 그중 평측에 맞는 글자를 쓰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평측이 잘 맞고 압운이 잘 된 시를 읽으면 정말 노래하듯이 부드럽고 아름답다.
送人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언덕에 풀빛 푸른데,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언제 다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이 시는 우리가 잘 아는 고려문신 정지상의 <송인>이다.
교과서에 나오니 다들 잘 아는 시일 것이다.
이 시는 한문으로만 읽어도 리듬감이 살면서 노래하는 느낌일 것이다.
거기다 대우도 참 잘 됐고 시정의 애절함도 절묘하다.
이런 시가 정말 잘 된 시이다.
이 책에는 이 시가 들어있지 않지만 예를 들자만 그렇다는 것이다.
[꽃들의 웃음판]에 들어온 시들은 그 계절을 아주 멋떨어지게 잘 표현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자 한해를 잘 돌아본 느낌마저 들었다.
이 시집을 엮은 정민 선생님의 의도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시집을 읽고 나면 '참 그렇지! 봄에는 그런 마음이 들고 여름엔 전에 못 보든 폭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지난 일을 잊고 살기에 해마다 이런 말이 나오지, 가을엔 또 그렇게 낙엽이 지고 겨울엔 흰눈이 슬픔의 빛깔로 내리고 그리움으로 쌓이고 쌓이는 것이지' 라며 책을 덮는 것이다.
참 좋은 한시들을 마음껏 감상한 좋은 시집이었다.
그런데 개인적인 취향으로 김점선님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