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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평점 :
사람이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 한 채의 집을 짓기도 힘든다고 한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집이란 재테크의 수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에 집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농경사회처럼 경제적 기반이기도 한 땅 즉, 지역을 고수 하지도 않아도 되고, 교통의 편리로 원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일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러 여생을 보낸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정말이지 요즘은 평생을 두고 , 또는 자손 대대로 물려 주려고 집을 짓거나 사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 살고 있는 집에 철학이 담기기를 또는 철학을 읽기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는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태어나 채5년도 살지 않았던 시골 집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목수이신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었다. 우리부모님은 결혼 후에도 큰집에서 한동안 같이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바로 분가를 하지 않았고 남매를 낳고 난 후에 본가에서 골목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 했다가 삼촌이 분가를 하게 되자 내가 태어난 집을 지어서 이사를 하고 부모님이 처음 분가 했던 집은 삼촌댁에 주었다고 한다. 그 마을은 집집마다 배나무가 있어서 동네 이름도 배마을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집에도 배나무가 있었다. 큰 배가 열리지 않고 아기주먹만한 돌배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나무 다음으로는 감나무가 많았다. 우리집 앞 마당 끝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담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남향으로 ㄷ자로 앉은 우리집은 마당끝이 1미터 이상되는 언덕이었다. 마당에서 1미터 정도 아래에 넓은 밭이 있었다. 아이들이놀다가 마당에서 떨어지면 다칠 위험때문에 마당 끝에 화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집을 지었을까?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을 읽으면서 우리선조들의 자연 사랑을 마음껏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마음껏 담은 건축물이 아닐까? 거기다가 지은이의 철학까지 담겼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담아 집을 짓고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 이름을 붙인 집에서 산다. 자신이 뜻을 세운데로 살수 밖에 없을 듯하다. 정말 멋진 선조들이 아닌가!
다산 정약용 편에서 자신이 머무른 오두막의 당호를 [四宜齋]했다고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네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이 머무른 곳에 당호를 짓고 적극적으로 가꾸며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에게서 삶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집을 지을때는 풍수지리를 많이 본다. 이사를 할때 길일을 택하고 대장군이 있는 방향을 피하고 하는 것도 일종의 풍수를 보는 관행일 것이다. 이런 관행이 서양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철학이 음양오행을 중시하다 보니 풍수라는 것을 중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송시열 편에서 우암 송시열은 풍수적으로 집터로 보여지지않는 곳에 집을 지었다. 그는 풍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암서재를 지어서 오늘날 까지 전하며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풍수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닌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증고택은 집이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아야 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을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다. 단 p252에 송시열이 파직당한 연도의 오기 1951년과 1953년은 1651,1653으로 고쳐야 겠고, p301황명학은 양명학으로 고쳐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