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전 서독은 스파이들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특히 서베를린이 그 정점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서독에서는 사형제가 없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무기형인 것이다. 스파이활동을 하다가 적발되어도 감옥에서 조금 썩거나 추방되면 그만이다. 동독에 떠있는 섬처럼 베를린이 자리잡고 있고 그 도시도 반으로 나뉘어서 이념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념이 서로 다른 스파이들이 득실거렸던 것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모멘트]는 서베를린에서 활동한 이중간첩과의 사랑 이야기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두는 참 우울하다. 작가는 주인공의 유년시절이나 현재의 삶이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어린시절 불우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부모의 영향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망설이고 심지어 자신에게 사랑고백을 한 애인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일을 핑계삼아 여행을 떠난다. 베를린에 오게된 것도 일종의 도피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미지를 대인관계에소극적이고 차가운 사람으로 설정해 놓은듯보인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주인공 토마스는 마음이 따뜻하고 적극적인 사람이라는게 드러난다. [모멘트]가 이루지 못한 쓸쓸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 하고 책을 읽어나가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참 마음이 따뜻해 지고 행복하다. 특히 토마스가 같이 살게되는 동성애자에다 마약중독자인 룸메이트 알스테어 피치몬스와의 우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방식에서 개방된 사고방식과 적극성이 돋보인다. 페트라를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을 느끼는 설정부터가 관계에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사람의 행동은 아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그렇게 될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중간첩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안타까움이나 쓸쓸함은 없고 끝까지 마음이 훈훈하다. 소설 속 주인공 토마스 네비스트의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작가에게 메모와 기록은 필수라고 본다. 그것이 작품을 쓰는데 자료의 역할도 하지만 글쓰기 연습을 하는데도 적잖이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미래에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멘트]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도 글작가가 되려는 마음이 있다.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조금씩 준비하고 있고 가끔 끄적거려보기도 한다. 어떤날은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풀려나갈때도 있지만 진행이 잘 되지않고 막히기 일쑤다. 그러면 메모해 두었던 것들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며칠 묵혀두었다가 다시 쓰기도 한다. 그런 연습들이 좋은 글을 쓰는 밑거름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아직 작가로 등단하지 못한 이유는 자주 쓰지 않고 가끔 써보기 때문이다. 많이 읽긴하지만 많이 써보기를 게을리 하고 있다. 평생 독자로 머물 공산이 높다. 이러는 자신에 대해 조급증을 내고 안달하며 써보는 시간을 내려고 노력해야 작가가 될 조짐이라도 보이지만 가능성이 점점 멀어지는 듯 보인다. 어제 오늘 창원에서 열린 세계아동문학 축전에 다녀왔다.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많은 작가님들을 만났다. 그 분들의 말씀은 다른사람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말씀엔 많이 써 보아야한다는 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거론의 여지도 없다는 것이다. 써보지 않는데 무슨 작품이 나올 것인가! 좋은 작품을 필사하는 것도 좋다고 하신다. 필사도 써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많이 읽고 작품에 대한 안목을 길러가라는 요지였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을 읽으면 나 자신이 그곳에 있느듯 착각한다. 그렇다면 그만큼 세세하게 배경 묘사를 잘 한다는 것이고 그 밑천은 꼼꼼한 기록에 있다고 본다. 아무튼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조금 아쉬움이라면 여운이 별로 남지않는 점이다. 확실히 상황을 정리해줘서 아쉬움이 없는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