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되어 출판된 책을 볼 때면 때론 도저히 우리 정서와 맞지 않아서 실망하게 되는 작품도 있다. 서양인들은 같은 말도 빙빙 돌려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우리와는 어순이 달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단테의 신곡] 은 시다. 시는 일종의 노래다. 그냥 서사만 번역한다고 의미가 다 전달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내가 신곡을 처음 읽었을 때는 특별한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다시 읽으니 종교적인 성숙도 있었겠지만 시의 느낌을 살리는 번역이라서 훨씬 잘 읽혔다.
아이들 책도 마찬가지다. 같은 작가의 책도 번역자에 따라 많이 다르다.
내가 김서정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마리아 니콜라예바의 [용의 아이들]을 읽으면서이다.
우리 아이들중 첫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는 유치원, 세째는 임신중이었다. 아이가 셋이나 되니 자연스럽게 나의 모든 코드가 교육에 꽂혀 있던 때였다. 나는 아이들이 좋은 책과 만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그때 내 수준은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계몽사 아동문학 전집 정도였다. 그 때가 변화가 시작되고, 책이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었다.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넘어서 교육운동으로 넘어가던 시대이기도 했다. 우연히 한 도서관에서 주체한 동화 작가와의 만남에서 어린이 책읽는 어른들의 모임 [얼레와 연]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모임의 멤버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 책에 관한 공부도 하고 진짜 그림책과 동화책을 직접 읽기 시작했다. 국내 작가의 아동문학 비평서 뿐만아니라 외국작가의 안내서도 찾아읽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이오덕 선생인의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 [원종찬 평론] 등등을 읽었고, 외국 서적으로는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과 마리아 니콜라예바의[용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책을 고를 때 기준이 생겼다. 전집으로 한꺼번에 구입하지 않겠다는 것, 그림책도 작가와 출판사까지 따져서 사자는 것, 꼭 나와 남편의 입말로 읽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튼 그뒤 아이들과 서점 나들이를 하면 아이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게 하고, 그 책을 사 주는 조건으로 내가 추천하는 책도 꼭 함께 사게 해서 읽어 주었다.
김서정 작가님의[어린이 책 번역이 쉽다고?]를 꼼꼼하게 읽었다. 작가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작가님은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아이에게 골라 주어야할지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