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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 소년 ㅣ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이 소설은 병자호란으로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병자호란때이고, 공간적 배경은 청나라 심양이다. 소년의 이름은 윤승이다. 윤승은 특이하게도 수를 잘 놓는 재주를 가졌다. 조선의 남성들이 수를 놓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여자 아이도 아닌 남자 아이가 수를 놓는다는 발상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병자호란 때 볼모로 끌려간 양반의 수행원이나 호위무사들이 무료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자수를 배웠다는 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특히 평안북도 안주에서 만든 수를 '안주수'라고 한단다. 남성 장인들이 전문적으로 수를 놓았다는게 엄청 신기했다. 난생 처음 알게된 이야기에 완전 매료되어서 기대를 잔뜩하고 책을 읽었다.
양복점이나 세탁소, 옷 수선 집에서 남성이 바느질하고 옷을 만드는 경우는 종종 보았다. 하지만 수를 놓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내가 알기로 그 시절은 남녀의 역할을 뚜렷하게 구별하던 시대였다. 물론 잘 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소설 속에서도 윤승의 어머니는 수를 놓는 아들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내놈이 할 일이 아니라면서.
사실 세상에는 남자일, 여자일이라고 딱 정해 놓은 것은 없다. 다 인간들이 왜곡시킨 시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성이 수를 놓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이유가 전혀없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수를 놓는 소년이 주인공이고, 윤승은 수를 놓는 재주 때문에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더 큰 위기를 맞기도 한다. 솔직히 이 소설이 매우 재미있지는 않았다. 소재가 특이했고,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속 이야기라는 것 말고 크게 흥미를 끌지 못했다. 변죽만 울리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소년이 스스로 위기를 해쳐나가서 발전하여가는 모습이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쉽게도 소년이 수놓은 물건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그곳에서 달아나는 것으로 끝이난다. 작가는 또다른 세상, 즉 보다 넓은 세상으로 꿈을 펼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처음에 하려는 말이 끝에가서 달라진 느낌이랄까? 물론 살다보면 처음 펼치려던 일이 그 지역에서는 받아들여지지않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뜻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경우가 어디 흔하겠는가? 더구나 열 대여섯 정도의 소년에게 말이다. 윤승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면 좋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재주만 이용하려는 나쁜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 늘 도와 주는 어른이 있고, 스승이 있었다는 설정은 정말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소재가 참 좋은데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려서 너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