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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을 첫 몇 페이지 읽고 난 뒤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대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계속된 대화체 문장과 톡톡 튀는 내용이라서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전개가 뻔해보이는 그렇고 그런 가족사인듯 내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결혼식이 취소되고, 줄리아의 집으로 아버지가 배달되면서 '뭘 이야기 하고 싶은 거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줄리아의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 모습 그대로 안드로이드 사이보그 즉 복제인간이 되어 딸 앞에 배달 되어 왔다. 둘은 살아생전 반목만 거듭한 부녀간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억지 여행을 결행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두 부녀는 몬트리올, 뉴욕, 프랑스, 베를린을 넘나들며 가족의 서사를 따라 여행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뜻대로라기보다 자식을 보호하기위해 딸의 인생에 심하게 관여 한다. 아버지에게 인생을 조종당했다고 생각하는 딸은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를 떠났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소원해져서 거의 보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부모는 언제까지나 자식 곁에 남을 수 없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남지 않은 줄 알게 된 아버지는 생명이 다하기 전에 자식과 화해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부모들과 자식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줄리아의 아버지 안토니의 행동을 보며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차마 못다한 이야기들]은 때론 웃기고 때론 뭉클한 감동에 눈물까지 흐르게 만들었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가 그렇다. 아이들이 어릴때는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하느라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러다 정작 은퇴를 하고 시간이 나지만 자식들은 이미 멀어져서 다가오지 않는다. 함께한 추억도 없고 서로를 잘 몰라서 오히려 만남이 불편하다.
부모는 성인이 된 자식을 성숙한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고 독단적인 언행을 고수하고, 자식은 부모의 간섭에 질려서 더욱 거리를 둔다. 자식을 지키려 했다는 부모의 행동은 자식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자식도 부모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기 마련이다. 주위에서 보았던 서로 반목하는 가족의 모습이 이렇다.
내 부모님의 삶을 회상해보면 언젠가는 목숨이 다 한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생명이 영원할 것 같이 미래를 준비하셨다. 나 또한 미래를 위해서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미룬다. '은퇴하고 여행가자, 내가 먹지 않으면 아이들이 더 먹을 수 있잖아.' 미루고, 양보하고.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나도 늙어 버렸다. 길들여진 습관 탓에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즐겁지 않다.
자식도 부모는 언제나 그렇다고, 다음에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
풍수지탄이라고 했던가?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이 2023년 내게 온 책들 중 가장 감동이 컸다.
이 소설은 네 운명을 사랑하고 현재를 즐기라고 강하게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