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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잔 - 경남 스토리 공모전 대상 ㅣ 토마토문학팩토리
박희 지음 / 토마토출판사 / 2023년 4월
평점 :
책 소개 글에서 [이도다완]이라는 글자를 보고 무척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도다완은 일본으로 잡혀간 우리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에 붙은 이름이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새롭게 진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조상들이 밥그릇, 국그릇으로 쓰다가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가면 개밥그릇으로 막 던져주었던 흔하디흔한 조선의 막사발에 붙은 이름이었다는 것을.
[제왕의 잔]은 소설이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부터 국뽕이 차오르는 이야기인 줄알고 국뽕에 마취될 준비를 단단히 했다. 사실 생각보다는 국뽕이 차오르는 소설은 아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같은 김진명류 소설은 아니라는 소리다. 솔직히 국뽕보다 우리 역사의 위정자들에게 많이 실망하고 민초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조선은 농사를 천하지 대본이라고 하며 중시했지만 상공업을 천시했다. 상공업을 천시한 정책은 소중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전해지지도 못하고 보전되지도 않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의 막사발을 [이도다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한 일본과 정말 대조적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기술이 전수되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발전시켰다.
일본이 임진 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소설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고려청자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함과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달 항아리 조선백자는 선비 정신의 頂點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막사발은 어떤가? 차를 따르면 그 투박함이 신비로운 기물이 되고, 햇살이 비치면 그 깊이가 우물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자연스러움과 조용함이 오롯이 담기는 그릇 -p268
조선의 막사발을 井戶茶碗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모양 그대로이다. 우물 모양의 차 그릇.
유럽 왕실의 찻잔 같은 화려하고 날렵함은 없지만 은은하고 우아하며 경박하지 않다. 한마디로 믿음이 간다. 커피나 홍차보다는 숭늉을 담아야 더 어울릴 것 같이 느껴진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조강지처의 기품이 있다.
그러니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가지고 싶을 수밖에!
[제왕의 잔]은 도경과 연주의 로맨스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가 큰 줄기로 진행된다. 하지만 나는 두 남녀의 사랑보다 도자기와 임진왜란이 훨씬 더 큰 관심사였다. 일본이 도자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일으킨 전쟁이 소재이고 주인공인 도경이 도공이니 도경은 일본으로 끌려갈 것이고 거기서 이도다완을 완성하는 도공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하며 읽었다. 하지만 끝이 내 예상대로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솔직히 재미있게 잘 읽었다. 재미있는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었다. 그러니 크게 여운이 남지는 않았다.
다만 작가의 꼼꼼한 역사 공부와 취재는 정말 칭찬하고 싶다. 한문공부까지!
몇 년 전 내가 속한 책 읽기 모임에서 임진왜란을 공부하면서 왜성에 관한 공부와 답사를 했다. 그렇게 공부했던 것들이 이 소설을 읽을 땐 빛을 발휘했다. 왜성과 지명 이해가 쏙쏙 되면서 책 초반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부산에서 자라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부산이 주 무대인 소설이 이해되지 않고 지명이나 말이 겉돌았다면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제왕의 잔]을 역사 동아리 도반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우리가 답사했던 왜성이 이 소설에 나와요"라고 외치며
이 소설은 곧 드라마로 나올 것이다.
나는 TV를 보지 않지만 아마도 본방 사수하며 애착을 가지고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