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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미로 ㅣ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2
천세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 꾼 미로]를 몇 장 읽기도 전에 난 책에 빠져들었다. '김애란 작가를 잇는 좋은 이야기 꾼인가 하고 잔뜩 기대 했다. 그런데 내가 많이 성급했다. 1부의 이야기까지만 그랬다. 2부에서는 완전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미로의 호수 세계다. 1부의 이야기가 발랄한 청소년 소설의 전반 부 같았다면, 2부는 성인을 위한 동화 같았다. 좋은 말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다소 지루했다. 안개가 자욱이 끼인 호수 세계는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평화롭고 아름답고 조금 아련할 뿐, 대부분 지루했다.
그냥 60대 할아버지와 열 한 살 짜리 소년이 함께 떠난 도보 여행기 같았달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호수세계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과 다른 차원의 세계다. 작가는 ufo나 평행 우주, 4차원이니 하는 물리적 우주 관념에 관심이 많았나 보다. 그리고 마을의 이야기꾼은 [기억전달자]라는 영화에서 차용한 것 같기도 하고, 아프리카 부족들이 자기 부족의 역사를 기억해 전달하는 '그리오'에서 착안한 것 같기도 했다.
옛날 옛적 우리 인류에게 문자가 없었을 때는 세상일을 기억해서 전하는 역사가들이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의[역사]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헤로도토스가 발품을 팔아 잘 청취해서 기록한 책이다. 이 소설에서도 '그리오''마나스치'등을 예로 들면서 미로의 호수 세계의 이야기 꾼이란 것이 그런 사람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2부에서 소개되는 호수 세계는 크고 작은 호수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마을에는 이야기를 전수 받고, 전수할 이야기를 모으는 이야기 꾼이 있다. 각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꾼들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서 물물 교환을 한다. 우리 마을에서는 생산 되지 않는 물건을 다른 마을에서 구입하기 위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필요한 물건을 바꾼다. 이야기가 일종의 화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각 마을의 이야기 꾼은 엄청 중요하다. 사람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바꾸고 생산하기 때문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늘 평화로운 일상이다. 욕심이 없으니 다툼도 없다. 물론 마을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달라서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있고, 논쟁을 피하고 최소한의 언어로 살아가는 마을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평화롭다
작은 호수 마을에 사는 미로는 크나큰 슬픔을 간직한 아이이다. 미로와 이야기꾼 구루할아버지는 여행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 세상의 이야기도 모으는 것이다.
호수세계에는 차가 없어서 오직 도보로만 여행한다. 여러 호수 마을을 여행하면서 많은 버섯과 나무들이 소개된다. 동물이라고는 염소나 양 정도이다. 다른 동물은 없는지 언급되지 않는다. 그 버섯과 나무들 이름이 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들이어서 우리나라의 숲 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다른 세계라는 느낌도 없고, 어느새 신비로움 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작가가 나무이름이나 버섯이름을 알리려고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도 많이 아쉬웠다.
3부는 다시 현실의 세계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모든 사물에는 역사가 있다는 건가? 자연을 사랑하고 잘 지키자는 건가?
시인이 쓴 소설이라 참 아름답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