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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문 ㅣ 특서 청소년문학 19
지혜진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4월
평점 :
[시구문] ‘라쇼몽’이 떠올라 읽게 된 청소년 소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추천을 받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 때다. 평이 좋으면 바로 선택한다.
[시구문]은 이도 저도 아니다. 단지 [시구문]이라는 제목에 이끌렸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이 생각났다.
소설[시구문]의 ‘시구문’은 도성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한다.
‘라쇼몽’과 매우 비슷하다. ‘라쇼몽’도 시체를 버리거나 내어가던 문이고, 그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라쇼몽’은 극단에 몰린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다. 짧은 단편에 담은 이야기의 깊이가 정말 긴 여운을 남긴다.
청소년 소설[시구문]도 시체를 내어가는 시구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야기의 마지막에 새 삶을 찾아 나서는 세 소녀의 출발도 시구문에서 하게 된다.
작가가 시체가 드나드는 ‘시구문’에 꽂힌 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이 참 좋다. 주인공 기련은 시구문으로 시체를 내어가는 사람들의 약해진 감정을 이용해 시쳇말로 삥을 뜯는다. 여기서부터 무언가 엉뚱하다는 생각과 함께 멋진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잔뜩 기대하고 읽어나갔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실망스러웠다.
어머니가 무당일을 하는 기련은 한마디로 놀고먹는 소녀다. 엄마가 무당인 것이 너무나 싫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며 욕하는 걸 보고 엄마를 연민하면서도 엄마가 무당인 것이 싫다고 한다. 물론 무당은 8대 천민 중 하나다. 무시와 멸시를 당할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당은 일반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련은 엄마가 싫다면서 시구문에서 마음 약한 불쌍한 사람들을 속일 때 엄마가 무당인 것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해 줄만 하다. 백주와 백희를 돕는 걸 보면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를 보면 싫어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방법이 참 이해가 안 간다. 백주처럼 열심히 일을 하던가, 자신이 가진 특별한 기능을 연마하던가. 무언가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야 이야기에 호응할 수 있을 텐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상갓집에 가게 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상갓집에서 벌어진 일을 꼭 그렇게 마무리해야 했을까 참 실망스러웠다. 물론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지만, 잘못을 지지르고, 대신 죽고, 도망치고. 그리고 시구문에서 새 출발.
[시구문]은 자아를 찾아 시구문을 나서는 15세 소녀 이야기. 다소 실망감은 있었지만 무난히 읽힌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