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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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월 23일부터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방과후수업과 학원, 모두 휴업 중이다. 3월이 후딱 지나고, 4월에 접어들었지만 상황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바깥엔 매화가, 개나리가, 목련이 그리고, 드디어 벚꽃이 한창이다. 봄이 왔지만 봄을 맞이할 수 없다. 春來不似春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하면서 일주일만 아무일하지 않고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딱 끊기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아가니 밥벌이를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 걱정한다고 일이 해결 되는 것도 아니고 책이나 읽자.”

  그동안 사 두었던 책들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미미여사의 추리소설로 시작했다.

  먼저읽은 [솔로몬의 위증1,2,3]은 잡다한 고민을 다 날려줌과 동시에 제도권 속에서의 교육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사건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어서 대체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손에 든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1,2]다. [솔로몬의 위증] 매권 700페이지, [기사단장 죽이기1,2] 매권 600페이지. 시간이 철철 넘치니 책의 두께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미야베 미유키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많이 다르다. 속이 시원한 탄산음료와 향이 은은한 녹차의 차이 같다고나 해야 할까?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는 내내 나는 깊은 명상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조명과 소리를 줄이고,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릿속 생각을 몰아낸다. 최소한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감은 눈에는 눈꺼풀을 통과한 가느다란 빛이 느껴진다. 점점 감각이 무뎌지고 바닥과 닿은 엉덩이의 무게만 남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 같다.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뇌리를 가득 메우다가 명상에 빠져든 나는 존재 자체를 망각해 간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간직한 형이상학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포로 암시한 주제가 다 드러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이야기들처럼 꽤 기묘했다.

  초상화 전문 화가인 ‘나’는 아내의 갑작스런 이혼 요구로 집을 나와 별거하게 되고, 친구의 시골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 집에서 저명한 일본화 화가인 친구 아버지가 그린 그림과 만나게 되면서 기이한 일들과 맞닥뜨린다. 그 그림에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60cm짜리 [기사단장]은 이데아라고 자칭하며,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깊숙이 관여한다.

  나는 그림 속 기사단장, 즉 이데아는 세상이 만든 관념의 틀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구시대에 형성된 왜곡된 사고이거나, 꼭 청산해야할 묵은 빚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익숙해진 사회의 통념 같은 것이라고.

  작가는 안슐루스 시기의 빈에서 저지른 나치의 만행을 이야기하고, 난징에서의 일본군에 의한 중국인 대학살도 말한다. 그 일들은 지나간 역사이지만 그냥 묻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역사라면 또는 잊지 말아야할 진실이라면, 꼭 되짚어서 규명하거나 진실을 밝혀야 역사는 앞으로 전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나의 이데아를 죽임으로써 세계가 변해버리지 않나요?”

  “그야 변하고말고. 그도 그렇지 않나? 하나의 이데아를 말살했는데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세계가 대체 얼마나 의미 있을거라고? 그런 이데아는 또 얼마나 의미 있을라고?” -2권 p342

  ‘나’는 기사단장(이데아)을 죽여 사회 통념을 깨뜨리고 한 단계 나아갔다. 다음단계에서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 속 인물인 긴얼굴(메타포)이 안내하는 2중메타포의 터널을 통과한다. 2중 메타포를 빠져나옴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의지로 내가 누구인지,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천착하고 제대로 직시해서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본능과 감추고 숨겨둔 본모습을 알게 된다.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 읽고 나서, 역시나 무라카미의 다른 소설처럼 이 소설에도 니체의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고 느꼈다.

  ‘나’-낙타(기존 세계의 가치-이데아), 멘시키-사자(자유를 찾은 정신-메타포), 마리에-어린아이(새로운 자유, 또는 혁신?). 거기다 여동생(고미치)-딸(무로)로 이어지는 것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리게 했다.

  이 소설의 바탕에 깔린 철학이 심오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마치 동화나 환타지처럼 잘 읽혔다.

   [기사단장 죽이기]는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태엽감는 새]와 매우 비슷한 구조다. 두 소설에서는 아내의 부재, 우물(=잡목림의 구덩이), 난징 대학살(=관동군이 일으킨 전쟁), 이웃집 소녀 등이 비슷한 플롯이다. 하지만 [기사단장 죽이기]가 훨씬 스토리도 탄탄하고, 개연성 있는 구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기사단장 죽이기]로 받을 것 같다.

  청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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