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나와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꿈은 누구나 한 번쯤 가질 것이다. 그러나 꿈은 꿈으로 남을 뿐, 대부분은 실행하지 못하고 현재의 나를 살아간다.

우울증이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신체적인 에너지가 형편없이 줄어들어. 중증으로 가면 침대에서 1센티미터도 못 움직이고 눈앞에 있는 병뚜껑도 못 따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많은 환자들이 그나마 없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우울증 숨기는 데 써. 그럼 다른 사람은 몰라. 같이 살아도 몰라."

"그게 우울증의 증상이야. 우울증 환자들은 수치심, 죄책감, 무가치함, 절망감, 슬픔, 공허함 같은 감정에 빠져들며 자존감이 떨어져. 자신의 상태가 스스로도 너무 수치스럽기 때문에 그 상태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해. 정신질환에 씌워진 오명,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단단히 한 몫 하지. 아니, 우울증이란 말 자체가 문제야. 병명이 그러니까 다들 우울증을 단순한 우울감과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과 의지의 문제로 받아들여. 툭툭 털고 일어나 기분 전환하면 낫는 병으로 알잖아. 정신과 약 먹으면 정신병자 인증하는 것처럼 취급하고.

항우울제가 우울증의 전능한 해결책은 아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나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우울증은 뇌의 화학적 불균형이라는 생리학적 요인뿐 아니라 유전, 성격, 스트레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다. 프로작이 개발되기 전에는 약물치료보다 우울증의 심리적 원인을 밝혀내어 제거하는 정신분석치료가 더 우세적이었다. 지금은 약물치료를 우선하면서도 인지행동치료 등의 정신치료를 병행할 것이 권장된다.

불행하게도 어떤 항우울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가 있다. 그런 사람은 정신치료 등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항우울제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이라도 우울증은 재발률이 높다. 우울증 증상이 한 번 나타나서 끝날 때까지의 기간을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우울 에피소드를 겪은 사람의 50%~75%가 5년 이내에 재발하고, 전체적으로는 75%~95%의 우울증 환자가 한 번 이상의 재발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재발이 거듭될수록 빈도가 높아지고 에피소드 사이의 기간은 짧아진다. 우울증은 당뇨병이나 에이즈처럼 일생에 거쳐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병에 가깝다. 평생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진 윈스턴 처칠은 "내 평생을 따라다닌 검은 개가 있다"는 말을 했다. 검은 개는 그 주인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쫓아낼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검은 개에게 한번 물린 사람은 검은 개가 사납게 날뛰어 또다시 자신을 심하게 해치지 못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내면에 있는 검은 개를 작고 순하게 만들어 일생의 동반자 삼아 같이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물과 정신치료,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지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환자의 치료 의지가 다 같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에서 3억 5천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2030년에는 우울증이 질병부담률 1위인 병이 될 거라고 예고했다. 현재도 우울증의 질병부담률은 심장병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각종 질병 뒤에 숨어 있거나 동반되는 우울증까지 고려하면 우울증이 세계인의 사망 원인 1위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점차 암과 에이즈, 심장병, 교통사고보다 우울증이 삶의 질에 미치는 해악과 우울증으로 인한 사망률에 더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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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있다. 법적인 책임능력의 부재나 미진의 사유가 되는 정신질환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의 행동이 호르몬 작용에 의한 뇌의 화학적 문제로 환원된다면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화학물질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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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족주의적 영웅상에 기반하여 소설이 출간되고 영화도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왜곡된 민족주의적 색채가 덧입혀진 이런 천재 영웅상은 사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이 이야기는 원래 시인 공석하의 소설 『핵물리학자 이휘소』에서 비롯되었습니다(나중에 『소설 이휘소』로 제목이 바뀌었고, 다시 『이휘소』로 변경되었습니다).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에 내건 소설가 김진명도 이 소설을 기반으로 하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집필했고, 이 작품은 그의 출세작이 되었습니다.

공석하의 소설에 박정희가 이휘소에게 보냈다는 문제의 편지들이 등장합니다. 모두 공석하가 지어낸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공석하의 소설을 이휘소 박사에 대한 전기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김진명의 소설도 거의 그렇게 수용되었고, 심지어 공석하의 소설보다 훨씬 더 많이 읽혔습니다. 이휘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이휘소의 제자 강주상이 쓴 『이휘소 평전』을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유명인에 대해 깊고 넓게 알고 싶을 경우에는 그의 생애와 사상을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룬 평전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그런 평전이 출간되어 있다는 전제가 따라붙겠습니다만.

이런 상황에 분노한 유족은 급기야 고소장을 제출했고, 피고는 물론 공석하와 김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조차 피고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소설로 인해 망인의 명예가 더욱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낮아진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라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법부는 소설과 르포의 차이가 엄중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거나, 제대로 몰랐던 것이겠지요.

독자 대중을 미혹하고, 이에 사법부마저 편승하게 만든 이 사기극은 하나의 코미디입니다. 이는 대중의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연결됩니다. 소설에서 주장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소설은 소설입니다. 오죽하면 팩션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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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부부는 1920~1930년대 미국 사교계의
상징이라 할 만큼 화려한 생을 즐겼기에, 빚 역시 상당했다. 이 때문에 고료를 많이 주는 단편소설을 닥치는 대로 써야 했고(그렇기에 그의 소설에는 오자가 많다), 인생 후반부에는 오직 돈벌이를 위해 할리우드로 넘어가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했다. 아, 그렇다고 할리우드에서는 한곳에 정착했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그 안에서도 세 번에 걸쳐 이사를 했다. 그가 가장 먼저 머문 곳은 할리우드에서 약 두 시간 거리인 고급 주거지 말리부였다. 야자수가 도로변에 줄지어 있고, 신이 지구 위에 백설탕을 뿌려놓은 듯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신의 예술 작품에 격을 맞춰야 한다는 듯 인간들이 최대한 우아하게 지은 대저택들로 가득한 해변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문학가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 지병인 폐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물감을 뿌려놓은 듯 푸르게 빛나는 말리부의 바닷물을 두고 ‘습기 가득한 바람이 폐로 들어온다’며 이곳 역시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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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놈의 지방색은 이제 넌덜머리가 나요. 박 통이 갔으니까 그놈의 차별이 싹 없어져야 하는데, 손바닥만한 놈의 나라에서 망할 징조지요. 근데 그 하와이라는 것 말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이래요. 해방이 되고 나서 남쪽의 제일 큰 정적 두 사람은 이승만과 김구였어요. 이승만은 미군정의 도움을 받으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김구는 민족을 분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반대하며 서로 팽팽하게 맞섰어요. 그런데 김구는 미군정의 지지를 못 받는 입장이니까 그 대신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전국 순회강연을 나섰어요. 김구는 가는 지방마다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그 환영이 아주 열렬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강연은 큰 도시에서만 하게 되어 있었는데, 작은 군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겹겹이 기찻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김구는 예정에 없던 강연을 하고서야 기차가 움직일 지경이었어요. 그런 동태가 이승만에게 빠짐없이 보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런 보고를 다 받은 이승만이 기분이 나빠져 한마디 내뱉은 것이 ‘하와이놈들 같으니라구!’였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제시대에 이승만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미국 본토에 있다가 나중에 우리 동포들이 많은 하와이로 옮겼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이미 박용만이라는 사람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 동포들을 모아 독립투쟁을 할 군인들을 양성하고 있었어요. 이승만은 독립군보다는 외교 능력으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와이에 가자마자 박용만과 대립하기 시작했어요. 두 사람을 따라 동포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이승만 쪽에 몇 사람이 남지 않게 되어 이승만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어요. 이승만은 박용만 쪽으로 쏠린 동포들에게 감정이 많았는데, 김구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전라도사람들이 옛날 하와이의 동포들처럼 보인 겁니다. 그 다음부터 전라도사람들을 하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상계엄이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와 함께 계엄포고 10호가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전현직 국가원수 비방금지, 모든 정치활동 및 시위 중지, 대학 휴교, 언론·출판·방송의 사전검열 등이었다.
대학생들의 데모가 뚝 그치면서 세상은 다시 살벌해졌다. 서울을 향해 군부대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각 대학의 정문마다 장갑차를 앞세운 무장군인들이 포진했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들까지도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신문들은 나흘 만에야 18일에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도했다. 그것도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해서 쓴 기사가 아니라 계엄사가 발표한 내용을 그저 옮겨 싣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세간에는 계엄군인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저지른 잔인한 짓들이 소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민족 이야기의 인류 보편성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가슴 아파해 왔고, 한국의 작가로서 그 역사의 비통함과 쓰라림을 작품으로 충실하게 쓰려고 노력해 왔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태백산맥』이다. 『태백산맥』에는 단순히 한국인의 굴절 많은 슬픈 역사만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속에는 세계열강들의 각축이 내포되어 있고, 인류가 지향하는 평화가 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는 세계적 숙제까지 담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완역 출판된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들에게 보낸 글의 한 대목이다.
민족의 문제를 거론하거나, 민족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 즉각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뜻밖에도 많다. 특히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정도가 심하다. 더구나 ‘세계화’라는 묘한 바람이 불면서 민족의 이야기는 마치 반인류적이고 비세계화인 것처럼 몰아버리는 경향이 더 커졌다. 그것은 아주 잘못된 불구적 인식이고, 단편적 사고이고, 사대주의적 의식이다.
그들이 공박으로 내세우는 것은 민족주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히틀러의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타당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히틀러가 사라지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20세기 후반의 지구를 지배한 것은 두 개의 신제국주의였다. 미국은 패권주의로, 소련은 팽창주의로 제국주의화한 것이다. 그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소국들이 힘을 모으는 데는 민족주의밖에 없었다. 그 민족주의는 강대국의 민족주의와는 반대로 방어적이고 공생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힘이 약하니 누구를 공격할 수도 없고, 공격을 못하니 파괴할 것도 없고, 생존을 유지해야 하니 폐쇄적으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지식인 그리고 작가란
인간 세상이란 그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든 모순과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지식인이란 계층도 계속 존재해 왔다. 그럼 지식인이란 무엇일까?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그리고 이 나라는 온갖 부패의 노출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이라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옹호하고, 그 진실을 실천하고, 그 진실을 전파하는 존재여야 한다. 작가도 그 지식인에 속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보다 특히 작가는 만년의 생명력을 지닌 언어 작업을 하기 때문에 더욱 진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 세계적으로 왜 이런 과분하고도 황송한 칭호를 내린 것일까. 그건 모든 작가들이 그처럼 잘났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스승’이란 모범적인 작가들이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진실한 작품을 써낸 결과 부여된 이름이며, ‘그 시대의 산소’란 모든 작가들에게 어떠한 악조건에 처해 있더라도 진실만을 말하는 작품을 쓰라는 의무와 책임을 맡기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의무와 책임을 기득권으로 착각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다. 그래서 산소 역할을 거꾸로 해 탄산가스 노릇을 한다. 진정한 작가란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로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나 진보성을 띤 정치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직시하고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 불화의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 ‘인류의 스승’인 것이다.

그 어떤 예술이 인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을까마는 특히 소설은 말뜻 그대로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므로 인간의 구체적인 삶과 밀착되어 있고, 그 밀착 속에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는 예술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소설이라는 말과 역사라는 말이 동의어로 쓰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예술품을 만들어가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예술품으로서의 소설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비극이다. 그렇다고 하여 사회성과 역사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고 사적인 내면으로만 몰입되는 것은 누에고치가 제 집에 갇혀 죽는 것과 같은 소설의 자멸이다. 그 극단의 어리석음을 벗어난 조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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